[소설]마이너 리그(42)

입력 1998-12-06 19:21수정 2009-09-2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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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

③우리는 대공원 안의 술집을 찾아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정취를 지니고 떠나겠다는 두환의 갸륵한 소청에 따라 동동주와 파전을 주문했다.

덩치 좋은 김 간호사는 무척 활달했다. 수라상을 감독하는 상궁이 임금의 음식을 미리 먹어보듯이 승주의 술잔을 번번이 빼앗아서 먼저 맛을 보았다. 조국의 아내도 지지 않았다. 식어빠진 파전을 찢어서 굳이 조국의 입에 넣어주려고 했다. 조국은 마루 위를 기어다니는 딸을 불안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아내의 부르는 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하마터면 파전을 꿴 젓가락에 눈이 찔릴 뻔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싸우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여간 수선스러운 게 아니었다. 오백 원만 달라고 조르는가 하면 집에 가자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두환을 빼고는 다들 술맛이 날 턱이 없었다.

이윽고 두환이 떠날 시간이 되었다. 어깨와 다리 한쪽에 힘을 주고 그가 작별인사를 했다.

―그럼 연락들 하자. 조국이 너도 바람 좀 쐬야지. 한번 와라. 부부동반으로 와도 좋고. 그리고 뭐 부탁할 거 있으면 바로 전화해.

―아니야.

우리 셋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공항까지 가야지.

―그럼! 이제 언제 만날지도 모르는데.

―어서 출발하도록 하자.

우리는 서둘러 마누라와 아이들을 조국의 코란도에 태웠다. 그리고 그들 모두를 대공원 정문 앞의 택시 정류장에 내려놓고는 급히 두환의 차를 뒤따라갔다. 조국은 시원스럽게 가속페달을 밟았다. 두환의 차를 앞질렀다. 물론 우리가 가는 곳은 공항일 리가 없었다. 술집이었다.

승주는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탁자 위에 소리나게 잔을 내려놓더니 그제서야 말문이 터진 사람처럼 입을 열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두환의 결혼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럴 수 없기로 따지자면 여자문제로 세 번이나 이혼 직전까지 갔었던 승주 자신이 더했다. 독신남성이 결혼한다는 데야 문제가 있을 리 없다. 바로 그 점이 승주를 배아프게 만들었을 것이다.

―나쁜 자식! 소희를 죽여놓고 저만 팔자 고치면 다냐?

팔자를 고친다… 승주는 과부나 투기꾼들의 어법을 썼다. 하긴 두환의 이번 결혼도 소희 때와 비슷한점이없는 건아니었다. 신부의 뱃속에 벌써4개월된아이가자라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귀띔했던것이다. 소희가 12년동안 애써도 안 되었던일이새 신부와는쉽게 되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승주가 하는 말은 거의가 감정적이고 편파적이라서 조국과는 그런대로 대화가 되는 편이었다. 그런데 조국은 화장실에 두 번 다녀올 때까지 아무 말 없이 술만 마셨다. 아이 보는 일에 지쳐서 그런가 했더니 그건 아니었다. 그는 두환이 특히 자신을 지칭하여 ‘바람 좀 쐬야지?’라고 한 일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고 있었다. 두환은 ‘너 그 자리 오래 있다’는 말로 나를 건드렸을 뿐 아니라 조국의 아픈 곳도 한 번 찔러주고 간 셈이었다.

<글: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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