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세이]「불멸」,섬뜩한 역사인식 생생한 임진왜란

  • 입력 1998년 10월 26일 19시 23분


전쟁이란 정말로 광인과 천재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성공한 소설이란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만들어내는 공간’이라는 작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임진왜란이거나 이순신 원균 등에 관한 소개나 지식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것인데도 김탁환의 소설 ‘불멸’은 소름끼치는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독자들을 움켜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그 원인은 정확하게 조사된 사료들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픽션 속으로 녹아들게 한 소설적인 구조일 것이다.

서로 전공(戰攻)을 다투며 거듭하는 이순신과 원균의 갈등이 비로소 그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하였고, 간자(間者)를 풀어 세자(광해군)의 동태와 언동을 감시하면서 특히 장수들의 전공까지를 담보로 하여 자신을 향한 반역의 싹을 도려내는 선조의 집요한 제왕학도 이 소설을 즐겁게 읽게하는 새 패턴이다.

또 불바다와도 같은 전쟁 속에서 민중과 더불어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예술가들의 삶도 눈물겹게 그렸다. 명필 석봉 한호, 영원한 혁명가인 ‘홍길동전’의 허균, 그의 불우했던 스승인 손곡 이달, 그리고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과 그의 벗 최중화 등 실존인물들의 우정어린 역정은 끈적인 감동을 동반하게 한다.

‘불멸’은 4백년전의 이야기인데도 그 역사인식과 현실인식은 섬뜩하리만큼 오늘의 과녁을 뚫는다. 이를테면 오늘 우리가 참담하게 체험하는 지역 차별과 지역감정의 문제까지도 현실감 넘치게 그려놓고 있다.

‘불멸’은 지금까지 우리가 읽어온 역사소설을 통렬하게 반성하게 한다.그리고 정말로 놀라운 것은 갓 서른의 신인작가가 엄청나게 방대한 사료를 그토록 정교하게 펼쳐놓으면서 죽어 있던 역사 속의 인물들을 살아서 숨쉬게 하였다는 점일 것이다.

신봉승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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