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수형/총격요청 해프닝說 유감

  • 입력 1998년 10월 26일 19시 22분


역사에서 ‘우연(偶然)’과 ‘필연(必然)’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우연한 해프닝이 때로는 국가와 인류의 운명을 좌우하는 대사건으로 발전해 당대인들의 ‘숙명’이 되기도 한다.

1914년 6월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의 한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사건도 우연에 가까웠다.

세르비아 정부가 사건에 개입했다는 증거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게 되고 독일과 영국이 개입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대재앙으로 번졌다.

19년전 10·26사건도 그런 측면이 있다.

차지철(車智徹)대통령경호실장과 김재규(金載圭)중앙정보부장의 충성경쟁 감정대립이 대통령과 함께하는 술자리의 총질로 터지고 그것은 유신종언이라는 역사를 만들었다.

26일 검찰 수사결과 발표로 진상이 드러난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에 대해 일부에서는 ‘비정상적인 사람들의 해프닝’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3인조의 불장난’이라거나 ‘실현 불가능한 난센스’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국가안보를 이용한 범죄적 선거운동 전략이었다면 그것이 극소수 사람들 사이에 음모된 해프닝이었다고 해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안보는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기 때문에 ‘적측에 대한 무력시위요청’은 중대범죄이며 오늘도 전방 철책선을 지키는 70만 국군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과거 북풍(北風)을 이용한 정치공작이 먹혀들었던 역사적 배경이 없었다면 이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총격요청사건이 ‘해프닝’으로 간과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도 거기 있다.

이수형<사회부>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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