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홍/단죄받는 피노체트

  • 입력 1998년 10월 19일 19시 25분


칠레의 군부독재자 피노체트가 런던에서 영국경찰에 체포됐다. 피노체트에게는 ‘인간백정’이란 끔찍한 별명이 붙어 있다. 73년부터 17년간 그의 통치 아래에서 3천여명이 학살당하고 수천명이 실종됐으며 1백여만명이 국외추방당하거나 도피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비밀경찰에 의한 고문만행이었다. 고문으로 장애인이 된 사람이 10만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실리주의 외교의 나라 영국이 그를 체포한 것도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칠레가 영국의 비중높은 수출 대상국이어서 그렇다. 특히 피노체트권력의 기둥인 칠레 군부는 영국제 무기를 다량 구입해왔다. 영국 보수당정권의 대처총리는 피노체트의 반좌파 시장경제노선을 칭찬했고, 영국을 좋아하기 시작한 피노체트는 영국에 갈 때마다 대처에게 꽃을 보내곤 했다. 그러나 블레어의 노동당 정부는 달랐다.

▼피노체트는 73년 군사쿠데타로 철권통치자가 된 후 개발독재 경제정책으로 국민의 추앙을 받기도 했다. 인플레 억제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가난을 잊게 해준 공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의회해산, 정치행위 금지, 민주세력 탄압을 자행했다. 야당지도자나 반체제인사를 좌파지도자들과 함께 구속 협박 고문하고 처형했다. 그가 내세운 명분은 반공이었다. 그것으로 미국의 인권외교 공세도 면제받았다.

▼칠레정부는 외교관여권을 가진 피노체트를 영국경찰이 체포한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며 항의했다. 피노체트는 자신에 대한 형사소추를 모두 면제하도록 칠레 헌법도 고쳤다. 이에 따라 그는 칠레 실정법상 ‘양민’이다. 그러나 칠레 내 스페인국민 수십명을 살해한 그의 범죄가 ‘반테러 유럽협약’발동의 근거가 됐다. 반인류적 범죄는 국적에 관계없이 단죄 대상이라는 것이 국제사회의 합의다.

김재홍<논설위원〉nieman9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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