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사람·문화/분당 「댄디거리」]쭉뻗은 녹지대 형성

  • 입력 1998년 10월 8일 19시 04분


‘댄디거리엔 오렌지족이 없다.’ 19세기, 근대사회의 시작을 나름대로 예고했던 서양의 댄디(dandy). 상류계층으로 ‘반항적 천재’를 자칭하고 ‘낭비적 패션’을 추구하며 고급술집 등에 모여 남과 다른 외모와 문화에 심취했던 부류다. 그들의 면모는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도 남아있다. 과거와 차이라면 ‘천재적으로 튀기’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 아무리 튀게 입고 행동해도 비슷한 사람은 수없이 많다. 요즘 댄디족은 오렌지족의 상대개념으로 점잖고 단정한 멋을 내는 낭만적 중산층의 의미로 쓰인다. 분당의 ‘댄디거리’는 이들이 모여드는 대표적 장소

▼ 거리 ▼

경기 성남시 분당 신도시의 시범단지 건너편 안골 통도골 율동을 이으며 길게 뻗은 5천여㎡의 녹지대. 집집마다 80∼90대의 ‘어르신’이 산다는 장수촌. 30여가구가 농사로 생계를 잇던 ‘시골’이었으나 93년 분당신도시에 본격 입주가 시작되면서 먹자거리로 변신했다.

공인중개사 최기태씨. “지금의 댄디거리 한 가운데 93년 문을 연 한식집 ‘청솔밭’이 떼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주택을 개조한 음식점과 참나무 밤나무가 빼곡한 해발 1백여m의 산을 등진 녹지에 식당이 들어섰다.” 지금은 2백여 식당과 카페의 네온사인이 밤이면 주위를 밝히고 있다.

▼ 사람 ▼

오렌지족은 없다. 낮에는 분당 수지 등지에서 온 우아한 차림의 30대 중반∼50대 주부들의 친목모임장소. 오후7시 이후에는 서울 수원 등 반경 20∼30㎞내 지역에서 도시고속화도로를 타고 오는 ‘±30대’ 댄디 데이트족이 절반, 가족단위 외식객이 절반을 차지한다. 카페 ‘울타리’의 소인숙사장. “오렌지족이 좋아할만한 디스코테크나 고급술집은 없다. 업소들은 음악을 작게 틀어 속삭이듯 말하는 이들의 ‘귀족적’ 대화방식을 존중한다.” 댄디거리에서 데이트끝에 10일 결혼한다는 강용식(28·서울 관악구 봉천동) 오희주씨(28·여·경기 광주군). “여기는 ‘또 다른 세상’이란 느낌을 준다. 서울에서 불과 30분 거리에 나무 냄새 물씬 풍기면서 조용하게 대화할 수 있는 곳은 이 곳 뿐이다.”

▼ 라이브+향수 ▼

듀엣 ‘해바라기’와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의 통기타공연, 바이올린과 피아노 합주와 재즈공연이 밤을 수 놓는 댄디거리. 조용한 분위기에 더해 이 거리를 특징짓는 것은 ‘향수’다. 라이브 이탈리아식당 ‘빠스또’의 지배인 김진용씨. “자수성가해 신도시에 자리잡은 장년층, 80년대 격정기를 보낸 ‘±30대’ 등 주고객이 모이면 분위기는 어느새 그들의 학창시절로 돌아간다.”

▼ 댄디타운으로 ▼

댄디거리 동쪽 끝 2백70여만㎡의 분당저수지를 둘러싸고 조성중인 32만㎡규모의 율동공원 개장(99년2월6일)을 계기로 댄디거리는 더욱 커질 전망. 96년 저수지 옆에 문을 연 카페 ‘히든밸리’의 박의한사장. “아파트촌과 빌딩숲에도 음식점과 카페는 많다. 그러나 댄디들이 원하는 것은 같은 사람끼리 모여 있다는, 건너편 테이블의 ‘이방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라는 식의 안정감이다.”

〈나성엽기자〉news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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