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고문의혹 비켜갈 수 없다

  • 입력 1998년 10월 6일 19시 27분


‘판문점 총격 요청’사건 수사과정에 고문이 있었는지 여부가 민감한 쟁점으로 대두했다. 구속된 피의자 3명 중 2명이 안기부의 조사를 받다가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법원에서 진술했다. 안기부는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쌍방의 주장이 상반되는 만큼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와 사법당국은 진상을 철저히, 그리고 최대한 조속히 밝혀야 한다. 고문의혹은 ‘총격 요청’혐의 못지않게 중대한 문제다. ‘총격 요청’수사에서 결코 비켜갈 수 없는 사안이다.

우리는 두 가지 이유에서 고문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첫째, 고문은 법치국가에서 용인될 수 없는 야만적 인권유린행위다. 더구나 현 정부는 인권법을 제정키로 하는 등 인권에 깊은 관심을 표시하고 그것을 자랑해 왔다. 고문 유무는 정부의 공신력과도 직결된다. 둘째, 고문에 의한 자백은 증거능력을 잃는다. 피의자들의 주장처럼 만약 ‘총격 요청’ 자백이 고문에 의한 것이었다면 그것은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총격 요청’수사는 뜻밖의 방향으로 전개될 수 밖에 없다.

한나라당은 피의자들의 법원진술과 한 피의자의 사진을 들어 ‘총격 요청’ 자체가 고문에 의해 조작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안기부장과 검찰총장을 파면하고 구속수사하라고 요구하며 유엔인권위에도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안기부는 피의자 ‘건강진단부’와 검찰 조사과정에서의 진술을 내세워 고문주장이 허위이거나 자작극으로 보인다고 맞서고 있다. 국민회의는 한나라당이 ‘총격 요청’사건의 핵심을 흐리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어느 주장이 옳은 것으로 판정돼도 엄청난 결과를 불러오게 돼있다. 그러나 아직은 그것을 확증할 자료가 없다.

이미 법원은 2명의 피의자를 상대로 신체검증을 실시하고 국과수 관계자를 참여시킨 가운데 신체감정도 벌였다. 이제 국과수가 감정보고서를 내면 그것을 토대로 법원이 고문 유무를 판정하게 된다. 국과수와 법원의 책무는 막중하다. 이들 기관은 한 점의 의혹도 남기지 말고 진실을 분명히 가려야 한다. ‘총격 요청’과 고문 여부를 둘러싸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국과수와 법원은 그것을 조금이라도 의식해서는 안된다.

거듭 당부하지만 여야는 진실규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치공방을 자제하기 바란다. 정치권은 사건을 어느 한 쪽으로 몰고가는 작태를 그만두어야 한다. 자신들에게 유리하면 무한정 부풀리고 불리하면 모든 것을 일축하는 태도를 버려야 옳다. 고문 여부의 판별이 국과수와 법원에 맡겨졌으니 일단 지켜보는 것이 온당하다. 사후조치는 법원의 최종판단에 따라 취해지는 것이 당연한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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