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紙上 배심원평결]남편 「비자금」

  • 입력 1998년 9월 30일 19시 32분


▼아내생각▼

하경란(34·주부·경기 용인시 신갈리)

고향친구였던 남편과 8년 연애 끝에 결혼한지도 7년이 흘렀어요. 며칠전 자가용 승용차가 하도 지저분하길래 남편 대신 청소를 하다가 차 안에서 남편이 감춰놓은 ‘비자금’을 발견했죠.

결혼한 뒤 한번도 제가 세차하거나 차 내부를 청소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남편은 안심하고 숨겨놓은 거에요. 저는 사실 남편이 제가 주는 용돈 외에 별도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그동안 기본적으로 한달에 20만원씩 용돈을 주고 별도로 청구하면 술값까지 다 내주었어요. 이렇게까지 해주었으면 충분할 텐데 왜 비자금을 따로 챙겨놓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장보러 가서 콩나물 한봉지를 살 때도 한번 더 생각해보고 삽니다. 세살 난 딸 아이에게 옷 한벌 사주려면 몇번을 생각한 뒤에 결정해요. 한데 필요한 돈을 과다하게 청구하는 방법으로 용돈을 더 받아내고선 제게 밝히지 않은 용도로 돈을 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저는 가계부에 모든 지출을 기록해 보여주는데 그렇게 별도의 돈을 갖고 있어야 안심이 될까요.

제가 집안살림을 관리하고 있는만큼 용돈이 더 필요하다면 저와 상의해서 쓰면 될 거에요.

▼남편생각▼

박명동(34·갤러리아백화점 영업기획팀 대리)

남자가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일일이 집안에 다 얘기하지 못하고 돈을 쓰게 될 때가 많습니다. 회사에서 갑자기 경조사가 생기거나 하면 생각하지 못했던 지출이 생기게 되죠. 후배들과 어쩌다 술 한잔할 때 돈을 타서 쓰기도 어려운 노릇이구요.

또 상가(喪家)나 돌잔치 집에 가면 이따금 ‘고스톱’을 하게 됩니다. 이럴 때 집에다 신고하고 돈을 받을 수 없는 일이고 여기서 딴 돈까지 다 알려줄 의무도 없지 않나요.

더군다나 저는 신용카드까지 아내에게 맡겨놓았습니다. 긴급상황에 대비한 별도의 자금은 꼭 있어야 하는 형편이죠.

제가 군에서 전역하기전 대위 시절만 해도 현금으로 받는 수당이 있어서 조금씩 모아놓고 사용했어요. 지금은 모든 월급이 은행 온라인을 통해 지급되기 때문에 이런 돈을 마련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함부로 낭비하기도 어렵다는 얘기죠.

남편이 바깥에서 ‘쫀쫀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지낸다면 아내도 기분이 좋지는 않겠지요. 아내에게 생일선물할 때 용돈을 받아서 사 줄 수는 없는 거고요. 그렇다면 용돈을 조금 더 타서 모아놓았다가 필요할 때 쓰는 건 눈감아 줄만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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