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구름모자 벗기 게임 (62)

  • 입력 1998년 9월 28일 18시 41분


제3장 나에게 생긴 일 ⑤

―나쁜 인간, 이게 당신이 게임에 이기는 방식이야?

그는 결국은 늘상 이런 식이라는 듯 시큰둥하고 우울하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난 지금 아이를 유치원에서 찾아야 해요. 20분 뒤에….

나는 장소를 결정하지 못해 약간 망설였다. 그리고 말했다.

―20분 뒤에 온천 모텔 그 3층 방에서 봐요.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요. 꼭 봐야 해요. 올 수 있나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차에서 내렸다. 그는 나를 다시 쳐다보지 않고 차를 몰고 떠났다. 규의 차가 길 모퉁이로 사라지자 더러운 옷을 입고 함부로 바닥을 뒹군 것 같은 참혹한 기분이었다.

나는 대중 사우나실이 있는 온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그늘지고 습기찬 숲길을 따라 숲 너머의 산속에 있는 호젓한 온천 모텔로 걸어갔다. 나의 차를 몰고 가 모텔의 주차장에 세워 놓기는 어쩐지 꺼림찍했다. 두 번쯤 든 적이 있었던 온천 모텔의 3층 방에는 규가 먼저 와 있었다. 나는 문 앞에서 숨을 가다듬었다. 새벽에 눈을 뜬 후부터 그 순간까지 끊임없이 다짐한 말이 하나 있었다. 이제 그 말을 할 차례가 된 것이었다. 어리석고 천한 게임이었다. 단 한번도, 나는 당신을 사랑한 적은 없었다. 모든 것은 그냥 혼란이었다. 이 지경에 와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말도 있었다. 이를테면, 나를 단 한번이라도 사랑했던가 하는 따위 질문.

그러나 방안에 들어서자 모든 것은 예상과 달라져버렸다. 커튼을 친 방은 어두웠고 규가 격렬하게 끌어안았다. 나는 밀쳐내려고 그의 가슴을 밀다가 그의 등을 몇 번 쳤다. 그는 나의 행동에 상관하지 않고 나를 끌어안고 밀며 방바닥을 비척비척 걸어다녔다.

―그래서 어쩌라는 말이야? 그래서 어쩌자는 거야?

규는 괴롭게 내뱉으며 나의 옷을 벗겨냈다.

―인생을 바꾸는 짓 따윈 평생 한번이면 충분해. 다시 혼란을 겪고 싶지 않아.

그의 입술이 머리카락과 귀와 목께에 스쳤다. 그의 냄새를 맡자 나 역시 냉정해지려던 결심과 달리 나를 잡아먹으려는 맹수를 끌어안듯 사력을 다해 규의 등을 끌어안았다.

규가 나의 목을 데이도록 뜨겁게 물었다.

―그만 하자. 그래. 이제 그만 게임을 끝내자. 이렇게 빠르게 끝날 줄은 몰랐어. 하지만 난 게임 이상은 원하지 않아.

그런데도 그는 나의 몸속으로 손을 넣었고 나는 저지할 수 없었다. 우리는 불이 붙은 듯 흥분해 있었고 섹스는 갑작스럽게 끝났다. 우리의 두 몸 사이엔 따뜻한 물을 쏟은 듯 땀이 흥건하게 고였다. 나는 수건을 차가운 물에 적셔 다리 사이를 닦고 그의 몸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그의 몸 위에 등을 대고 천장을 향해 누워 중얼거렸다.

―당신 살은 나에게 너무나 친숙해져서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인육을 먹는 종족처럼….

그가 팔을 뻗어 나의 몸을 둘렀다. 나는 그의 손을 들어 올려 손금들을 오래 바라 본 뒤 손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난 당신이 아직 필요해요. 갑자기 이러지 말아요. 제발 아직은 나를 피하지 말아요. 나에게 전화를 해주어요.

규가 숨을 쉴 때마다 나의 몸이 오르락내리락 했다. 평화로웠다. 이런 시간에도 바깥엔 시간이 흘러가겠지. 사람들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움직이고 숲에는 찬란한 빛의 낙엽이 떨어지고 마른 풀들이 바람에 기울어지며 소리를, 스산한 소리를 내겠지…. 한참 뒤에 규가 말했다.

<글:전경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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