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창재/러시아위기와 한국 대응책

  • 입력 1998년 9월 3일 19시 30분


1일부터 이틀간 모스크바에서 열린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의 정상회담은 예상했던 대로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러시아의 총리와 내각조차 확정되지 않은 정치적 공백상태에서 양국간 정상회담은 무의미하다는 미국 내 일부 시각에도 불구하고 회담이 성사된 것은 이번 회담이 취소될 경우 궁지에 몰린 옐친이 회생불능의 치명타를 입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경제위기로 인해 의회로부터 사임 압력을 받고 있는 옐친과 성스캔들로 정치적 위상이 크게 실추된 클린턴간의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는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회담에서 클린턴은 러시아가 개혁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경우 미국과 서방은 러시아를 계속 지원할 것이라는 원칙론만을 재강조하는데 그쳤다.

▼ 총체적 파국 올수도 ▼

지난달 17일 러시아 정부가 90일간 일부 외채에 대한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할 때만 해도 러시아가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일단 낮아보였다. 무엇보다도 러시아가 이미 7월13일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하에 있었으므로 모라토리엄 선언은 더욱 큰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러시아 정부와 IMF가 내놓은 처방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러시아 외환위기는 빠른 속도로 총체적 경제위기로 확산되었다. 루블화의 가치와 주가가 걷잡을 수 없이 폭락하는 한편 금융시장이 마비되었고 물가는 치솟았으며 상품은 시장에서 사라져갔다. 또한 옐친이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세르게이 키리옌코 총리를 경질하고 5개월전 해임한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전총리를 신임총리서리로 임명하자 러시아의 경제위기는 정치위기로까지 증폭되기에 이르렀다.

러시아 경제위기의 심화는 세계경제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러시아의 부분적 모라토리엄 선언 직후 안정세를 유지했던 유럽을 비롯한 미국 및 일본 등 선진국의 주가가 크게 하락했으며 독립국가연합(CIS) 및 중동구 국가는 물론이고 중남미를 비롯한 다수의 개도권 국가들도 금융위기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이같은 긴박한 상황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구체적인 대(對)러시아 지원방안을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다음과 같은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첫째, 서방으로부터의 구체적인 지원 약속을 못받은 상태에서 러시아 경제위기는 더욱 악화되고 정치적 혼란도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개혁 정책의 지속과 정치적 안정이 필수적이나 현시점에서 경제적 논리와 정치적 논리간의 공통분모를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럴 경우 러시아 경제위기와 정치위기는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클린턴의 취약한 국내입지와 러시아내 혼란상태를 감안할 때 조만간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러시아를 본격적으로 지원하기도 힘들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러시아 경제위기심화는 앞으로도 세계 경제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다수 지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러시아 경제위기가 더욱 악화될 경우 이는 아시아 금융위기를 여타 지역에 확산시키는 결정적인 매개체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된다. 러시아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지만 러시아 경제위기가 악화될 경우 이것이 주는 심리적 효과는 지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 경제개혁 빨리 끝내야 ▼

마지막으로 러시아에서의 실패는 IMF의 신뢰도에 상당한 타격을 주어 일부 국가가 외환규제 고정환율제 등 IMF의 처방에서 벗어나는 조치들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자본시장의 혼란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국제기구의 필요성이 대두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같은 러시아 및 세계경제 여건의 변화는 IMF체제하의 우리 경제에 추가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단기적으로 볼 때 우리 기업의 대(對)러시아 수출뿐만 아니라 여타 지역에 대한 수출도 어려워질 것이고 국제적 투자심리의 위축으로 우리의 외국자본 유치도 더욱 힘들어질 전망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IMF와 합의한 경제개혁을 더욱 가속화함으로써 경쟁력을 제고하고 여타 개도국과의 차별화를 이루어야 한다.

대외적으로는 세계적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동아시아 및 세계차원의 공조체제 구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창재 (대외경제정책硏 지역경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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