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승부사」박세리

  • 입력 1998년 7월 7일 19시 29분


스포츠의 세계에는 잠시 대중의 시선을 모으다 무대 뒤로 사라지는 ‘반짝 스타’들이 적지 않다. 일시적 행운만으로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오래 버틸 수 없는 탓이다. 프로골퍼 박세리가 지난 5월 미국 LPGA챔피언십 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을 때 전문가들은 박세리의 롱런 가능성에 반신반의했다. 프로골프는 대회마다 우승자가 매번 바뀔 정도로 정상을 유지하기 힘든 종목인데다 동양인에게는 인종의 벽까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제 박세리가 US여자오픈에서 서든데스까지 가는 혈투 끝에 우승을 차지한 것은 한달반만에 메이저대회 1승을 추가했다는 사실을 뛰어넘는 의미를 지닌다. 골프는 기량 못지않게 철저한 자기관리나 냉철한 승부근성을 요구하는 경기다. 박세리의 위기관리 능력은 소녀티를 막 벗어난 어린 선수답지 않게 노련했다. 연장라운드 초반 4타를 뒤지면서도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경기를 풀어나갔다.

▼최대의 승부처였던 18번 홀에서 박세리의 진가는 빛났다. 티샷한 볼이 호숫가의 경사면에 빠지자 박세리는 양말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투혼을 발휘해 위기를 벗어났다. 이날 연장전은 상대가 아마추어선수였지만 결코 쉽지 않은 경기였다. 피를 말리는 대결 끝에 승리를 따낸 것은 그의 무한한 가능성과 지난번 첫 우승이 우연이 아님을 동시에 입증했다.

▼박세리의 장래는 매우 밝다. 이번 우승으로 그는 세계 정상의 선수로 확고히 자리잡는데 성공했다. 경제적 측면의 ‘박세리 효과’도 상당할 것이다. 박세리 자신과 후원기업에 돌아올 이익 외에 국가이미지에도 긍정적 역할이 기대된다. 좌절과 고난의 시대에 새로운 영웅으로 떠오른 박세리의 또 다른 승전보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홍찬식 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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