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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7월 1일 19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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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런 사실이 민간연구기관에 의해 먼저 확인됐다는 점이다.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보건복지부 산하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뭘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식약청은 수년전부터 국내에서도 환경호르몬 물질에 의한 생태변화 사례들이 잇달아 보고됐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 5월중순에야 “내년부터 환경호르몬에 대한 연구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일본에서는 컵라면용기와 젖병에서 환경호르몬물질이 검출돼 용기를 바꾸는 등 큰 소동이 일고 있는데도 이런 한가한 소리를 한 것이다.
식약청은 언론과 환경단체들의 질책이 있자 뒤늦게 지난달 17일 “컵라면용기를 수거해 검사해보니 환경호르몬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고 단정적으로 발표했다. 환경단체들과 전문가들은 즉각 식약청의 맹물을 이용한 검사방법이 잘못됐다며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결국 이번 강원대 환경화학연구소의 검사결과는 식약청의 검사방법에 대한 의문제기가 정당했음을 말해준다.
정부차원의 대책 역시 안이하기 짝이 없다. 정부는 지난달 초 환경부 주관으로 환경호르몬 대책회의를 열고 △99∼2001년 환경호르몬 현황과 생태계영향조사 △2002∼2004년 권고기준치 설정△2005∼2008년 환경호르몬 물질지정과 총량규제방안마련 등 3단계 대책을 세웠다.
이미 국내에서도 환경호르몬 물질에 의한 집단 불임사례까지 제기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이런 대책은 너무 느긋하고 안이하다. 단계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생태계조사와 인체역학조사를 동시에 병행해서 가능한 한 빨리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환경호르몬 문제는 새로운 무역분쟁의 요소가 될 전망이다. 선진국들이 환경호르몬 물질이 함유된 상품수입을 규제하고 나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에 대비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도 정부의 빠른 대응이 요구된다.
식약청이 환경호르몬 문제에 소극적이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것은 국민에게 줄 충격과 업계의 타격 등을 우려해서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식약청은 오직 국민건강만을 잣대로 삼으면 된다. 그래야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는다. 국민의 신뢰없이 식약청이 설 자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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