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은행혼란 이대론 안된다

  • 입력 1998년 6월 30일 19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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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은행 인수가 초반부터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퇴출은행들의 집단반발이 금융업무의 마비를 초래해 해당은행과 거래해온 개인과 기업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이같은 양태는 금융구조조정의 앞날이 얼마나 험난할지를 예고한다. 온 국민이 사태의 확산을 걱정하고 있다.

충청은행의 경우 임직원들이 합병 직전에 퇴직금 명목으로 5백여억원을 부당하게 빼돌렸다. 은행을 믿고 맡긴 돈을 그렇게 빼낸 것은 누구로부터도 공감을 얻지 못할 행동이다. 대다수 퇴출은행들이 전산시스템을 못쓰게 만들어 놓았고 일부 은행에서는 유가증권을 객장에 휴지처럼 뿌려놓았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은행의 시설과 재산을 항의나 투쟁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되지 않는다. 은행부실화에 책임이 있는 일부 경영진이 앞장서고 있다는 소식은 더욱 놀랍다.

퇴출은행 임직원들의 처지와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퇴출은행 종사자들에게 지금의 상황은 생존권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러나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이번 행동은 도가 지나치다. 여론의 지지를 스스로 배척하는 행위라고밖에 할 수 없다. 이래 가지고는 퇴출은행 임직원들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권리조차 찾지 못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금융기관은 문을 닫는 순간까지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포기하지 않는다. 신용과 서비스가 은행의 생명이자 종사자들의 직업윤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당국의 대책에도 문제가 있다. 충분히 예상됐던 일들인데도 왜 사전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는지 궁금하다. 사후에 내놓은 대책들도 실효성도 없고 현장감도 없는 것들이 태반이다. 예를 들어 수기통장으로 입출금을 하라는 지시는 전일 거래기록이 확인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현실성이 없다. 퇴출은행 어음과 수표의 처리문제를 놓고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면밀한 준비가 없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런 능력으로 어떻게 본격적인 금융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것인가.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책임문제를 따지기 전에 해당은행들의 조속한 정상화가 급하다. 대규모 금융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은행의 혼란은 빨리 마무리돼야 한다. 또 앞으로 있을 금융권 전체에 대한 구조조정이나 기업구조조정에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 사태는 서둘러 수습되어야 한다. 혼란이 조기에 마무리되지 않으면 우리 은행에 대한 외국투자가들의 신뢰도가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퇴출은행 종사자들이 이성적으로 판단해 인수업무에 적극 협조할 것과 당국의 시의적절한 대책 마련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우리가 사는 길은 안정 속의 개혁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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