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봉순이 언니(57)

  • 입력 1998년 6월 30일 07시 27분


아버지 어머니는 봉순이 언니를 시집보내려고 결심을 했다고 했다. 모래네 사는 이모네 집에 다녀온 어머니는 어느날 아침 아버지의 넥타이를 챙겨주며 그렇게 말했다. 출근하는 아버지에게 아침에 아버지 들으라고 피아노를 친 값 오원에다가 구두를 닦아 놓은 돈 오원 해서 모두 십원을 받으려고 안방으로 건너와 있던 나는 말을 꺼내는 어머니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벌써 동네에 소문이 다 난 것 같아요. 어제는 시장 갔다 오는데 반장집 아줌마가 넌지시 봉순이 어떻게 할 거냐고 묻지 않겠어요. 자기가 그러잖아도 우리집에서 일할 좋은 아이를 하나 구해주려고 했다면서, 봉순이를 그냥 집에 둘 거냐고 묻잖아요. 그 얘기를 듣는데 어떻게나 낯이 뜨겁던지… 이러다가 사춘기 된 영아나 준이가 알면 어쩔까 정말 걱정이예요. 애들 교육도 그렇고, 아무래도 시집을 보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여보?… 더 데리고 있다가 정말 소문이 퍼져버리면 그때는 시집도 못보내고 우리가 쟬 내내 데리고 있어야 할 거 아녜요?

그 무렵 늘 통행금지 시간인 12시가 땡, 치면 용케도 대문에 달린 벨을 정확히 누르고는 집으로 돌아오던 아버지는 집안일에 대해 관대하다 못해 거의 무심해져 가고 있었다.

―니 아버진 아마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시계가 열두시 누르면 요비링을 누르는가 보다.

어머니는 농담 반 비아냥 반으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우리들을 태우고 손수 운전을 하고 다니길 좋아하던 아버지는 이제는 일요일에도 거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런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그건 당신이 알아서 하구료, 라는 말을 했고, 실제로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어머니의 의견이 가장 중요했다. 아버지에게는 봉순이 언니를 시집 보낼까 말까, 보다 중요한 일들이 많았을 것이다. 국제 회의가 있었고, 해외 출장도 잦았으며 바이어들의 접대로 눈코 뜰 새가 없다고 했다. 다른 집의 아버지들도 거의 다 늦게 들어오는 것 같았으므로 특별히 이상할 것은 없었다. 더구나 아버지는 그 댓가로 달마다 더 많은 월급을 가지고 돌아왔던 것이다. 어머니 역시 애초부터 그러기로 아버지와 약속이라도 하고 결혼한 사람처럼 계를 붓고 새로 나온 냉장고를 사고, 새로 나온 선풍기를 사는 일이 더 즐거운 것 같았다.

봉순이 언니는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어머니가 외출을 하기를 기다렸다가 미자 언니네 집으로 갔다. 둘은 예전보다 더 낮고 은밀한 소리로 속살거렸다.

나는 여전히 그 집에 굴러다니는 주간지들을 읽었다. ‘감동수기’. 남자와 여자의 직업과 나이를 조금씩만 바꾸어 놓는다면 앉은 자리에서 백편도 만들어 낼 수 있는 비슷한 이야기들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은 매회 재미있었다. 어쩌면 인간들은 이렇게 가지가지 슬픔과 가지가지 상황들을 가지고 이렇게 가지가지 사랑을 하다가 일제히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는지.

<글: 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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