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키부츠 체험기]손혜신 『공동체생활 반했다』

  • 입력 1998년 6월 24일 19시 18분


취직도 못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나… 86년 당시 대학졸업반이었던 손혜신씨(34)는 막막했다.

그러다 대학 학과사무실 게시판에서 우연히 접한 키부츠 자원봉사자 모집광고. 어차피 앞이 안보이는 상황이라면 해외경험도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 대학생 배낭여행도 없었던 시절, 비행기라곤 타본 적이 없었던 그녀였지만 이스라엘, 키부츠, 공동체생활…등등의 낯선 단어들에 이끌리기 시작했다.

비행기표 한장 달랑들고 도착한 이스라엘 갈릴리 부근 하로드 키부츠. 그렇게 시작한 이스라엘 생활이 9년이나 갈 줄이야. 키부츠에서 처음 일을 배정받은 곳은 식당. 식기세척기를 통과한 그릇을 정리하는 일이었는데 그릇이 한꺼번에 쏟아질 때는 감당할 수 없어 저녁때면 ‘아이고 허리야’소리가 절로 터져나왔다.

그러나 그녀는 차츰 키부츠에 반하기 시작했다. 맑은공기, 아름드리나무와 잔디, 아름다운 정원, 아담한 집…. 사이사이로 가로세로 1m되는 나무상자에 항상 그득한 오렌지 자몽 포멜론 등 열대과일.

숙식과 여가를 키부츠안에서 모두 해결하며 함께 일하고 똑같이 나눠먹는 사람들, 네것 내것 없이 서로를 배려하면서 모든 사람이 가족같이 생활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일주일에 한번 저녁때마다 열리는 댄스파티는 남녀노소 가리지않고 하나가 되는 축제의 장이었다.

또 하나 잊혀지지 않는 것은 일이 끝날때마다 갔었던 브엘쉘바 베드윈시장. 천막과 양철오두막에서 TV 라디오 냉장고도 없이 사는 베드윈 사람들은 문명의 헤택을 받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요즘도 힘들때는 그들을 생각하면서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1년 자원봉사생활이 끝난뒤 그녀는 당분간 이스라엘에 남기로 마음을 먹고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에 입학, 이스라엘 역사공부를 시작했다. 이미 도전과 성취를 맛 본 그녀에게 미래는 두렵지 않았다. 청소 아기돌보기 등 각종 아르바이트로 석사까지 마친 그녀는 지난 95년 귀국해 현재 대학에서 히브리어와 이스라엘 역사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힘들었지만 내 청춘의 한 시절을 보내기엔 너무 매력적인 곳이었다”며 “한계와 고독과 싸울 자신이 있는 젊은이라면 키부츠에 가보라. 그리고나면 어느덧 성장해있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말했다.

〈허문명기자〉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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