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규민/미국부자와 한국졸부

  • 입력 1998년 6월 22일 19시 38분


작년초 미국에서는 15년 동안 6억달러(약8천4백억원)의 거금을 익명으로 사회단체에 기부해 온 갑부의 신원이 밝혀져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찰스 피니라는 이 사업가는 언론의 끈질긴 추적에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다가 회사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새 주인이 장부에 기록된 엄청난 기부금 명세를 보고 뉴욕타임스에 제보해 실체가 알려졌다. 그는 15달러짜리 싸구려 시계를 15년간 차고 다닐 정도의 구두쇠였다.

▼미 포브스지가 발표한 올 세계 최고의 부자는 역시 빌 게이츠였다. 5백10억달러, 우리나라 작년도 총예산보다 더 많은 71조4천억원의 재산을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75년 열아홉의 나이에 1천달러를 갖고 시작한 사업이 23년만에 5천1백만배가 된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성공의 비결은 ‘시간의 중요성을 늘 의식한다는 것’ 단 하나. 하루에 15시간을 일하는 기업가다운 얘기다.

▼그는 힘들게 번 돈의 30%를 사회단체에 기부해 왔고 50세가 넘으면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시애틀 근처 호숫가에 4천만달러(5백60억원)를 들여 건평 1천평이 넘는 호화주택을 지어도 비난을 받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독과점 시비를 놓고 미 법무부와 당당히 법정투쟁까지 벌일 수 있는 것도 정부의 특혜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때마침 우리나라에서는 위장분산한 주식을 세금없이 2세들에게 변칙 상속한 음성 불로소득자 등 졸부 수백명이 국세청에 적발돼 조사를 받고 있다. 세금을 포탈하면서 축적한 부를 미리 자식에게 빼돌리는 일이 미국 사회에는 없다. 재산 형성과정이 투명한 미국에서 부자는 존경받는 계층중 하나다. 당당하게 벌어 함께 쓴다면 우리나라 부자들도 사회의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규민<논설위원〉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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