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탠더드시대 19]저작권 보호

  • 입력 1998년 6월 11일 19시 22분


“×××후보와 함께 살맛나는 시를 만들어 봐요….”

이달초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기간중 전국 유세장에선 인기가요의 가사만 슬쩍 바꾼 여러 후보의 로고송이 울려퍼졌다.

노래 주인들이 가만히 듣고 있지 않았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8백여곡의 로고송 중 사용허가를 받지 않은 5백여곡은 한 곡에 1백만원씩 저작권 사용료를 지불하라”고 요구했다. 전국의 선거캠프에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불평만 털어놓았다.

90년대초 조각가 최모씨는 어느 화랑에 테라코타 작품을 팔았다. 그뒤 유학을 다녀온 최씨는 화랑이 자신의 작품을 브론즈로 복제해 수십점을 판매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아연실색했다. 최씨의 항의에 화랑측은 “작품을 팔 때 복제할 권리도 함께 넘긴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저작권 보호 인식이 확산되는 추세지만 최근 경제위기 탓에 실천은 미미하기만 하다.

대학 주변의 불법 어학테이프나 리어카 행상의 해적 가요테이프도 부쩍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정품으로 위장한 복제품이 아니라 해적판이란 것을 알면서도 버젓이 거래하고 있어 더 큰 문제.

저작권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방송사도 저작권에 대한 대우에 인색하기만 하다. 방송사가 지불하는 음악저작권료가 총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미국 일본 등은 3% 수준이지만 한국은 0.3%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 저작권 보호란 개념이 생겨난 것은 1908년 대한제국 당시 ‘한국저작권령’에 의해서였다. 이어 57년 저작권법이 시행됐고 미국 등의 통상압력 끝에 법이 두차례 대폭 개편돼 제도는 제법 선진화됐다. 그렇지만 창의력에다 땀을 보태 작품을 만든 창작자의 권리가 무시되거나 짓밟히는 일이 아직도 많은 게 현실이다. 창작자 스스로 권익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외국은 어떨까. 3년전 미국 대학연수의 기회를 가졌던 김모씨. 처음 강의를 받던 날 작은 ‘충격’을 잊지 못한다. 복사점에서 1백여쪽의 책 복사를 부탁하자 점원은 벽에 붙은 학술저작권단체의 전화번호를 확인한뒤 전화를 걸어 저작권 ‘가격’을 문의했다. 복사비엔 약간의 저작권료가 얹혀졌다. 김씨는 국내에서 각종 교재를 거리낌없이 복사 제본까지 해서 들고다니던 대학생활을 회상하며 작은 죄책감을 느꼈다.

외국 저작권단체들은 일반인들과 가까운 곳에 있다. 요즘엔 인터넷을 적극 활용해 일반인들에게 파고든다. 미국의 CCC(Copyright Clearance Center)도 그중의 하나. 미국 전역의 저작권관련 단체 정보, 관련 법령, 세계의 관련단체 자료 등이 가득하다.

무심코 저작권을 침해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선진국의 추세다. 개인의 창작물에 대해선 철저하게 보호해준다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다.

예를 들어 CD에 들어있는 몇 곡을 카세트 테이프로 녹음해 친구에게 선물하면 이것도 저작권 침해지만 이를 일일이 단속할 수는 없다. 독일은 바로 이런 경우를 ‘사적(私的)복제’로 규정하고 ‘사적 복제 보상금제도’를 운영중이다. 저작물 복제에 동원되는 비디오 오디오 공(空)테이프 판매대금에서 한시간당 12∼17마르크(약 90∼1백40원)를 보상금으로 떼어 저작권 관련단체에 넘긴다. 또 녹음 녹화기기에 대해선 값의 2∼3%를 보상금으로 뗀다는 것.

저작권은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나. 특허와는 달리 등록하지 않아도 법의 보호를 받게 돼있다.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이호흥(李浩興)책임연구원의 설명.

“저작권법상 보호되는 저작물은 ‘학술 또는 예술의 범위에 속하는 창작물’로 정의됩니다. 저작물을 창작하면 바로 저작권이 발생하지요. 별도 협의가 없을 경우 창작물의 무단복제와 유포는 모두 범법행위입니다.”

어쩌다 저작권을 사용하는 경우 저작자와 연락이 쉽게 닿지 않는 게 보통이다. 저작자가 누구인지, 저작권은 언제까지 유효한지, 저작권을 이용하려면 얼마의 이용료를 내야 하는지 등에 관한 저작권 관리정보가 일반인들과는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는 실정. 이럴 땐 각종 저작자 협회를 창구로 활용하면 된다. 그러나 이런 기관이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구의 저작권 관련기관들은 창작자들에 의해 결성돼 1백년 이상 역량을 축적해왔지요. 우리나라는 최근에서야 정부주도로 결성돼 권익보호 노력이 아직 미흡한 상태입니다.”(문화체육부 저작권과 김태훈·金泰勳 사무관)

우리나라에서 저적재산권의 보호기간은 일반적으로 저작자의 생존기간과 사후 50년간. 이호흥 책임연구원은 저작권을 보호하는 것이 자작자의 창작의욕을 키우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한다.

“그림 음악 영화를 복제해서 즐기면 손쉽고 값도 싸 좋은 것 같지만 결국 문화의 내용이 빈약해지는 결과를 맞게될 겁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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