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신풍속도②]주먹밥-뽑기등 옛먹거리 인기

  • 입력 1998년 6월 2일 20시 18분


서울 삼청동에 자리잡은 E카페. 70년대 어두운 ‘찻집’ 분위기에 테이블마다 당시 쓰였던 국민학교(초등학교) 국어교과서가 한권씩 올려져 있다.

철수와 영희가 나오는 국어책을 보면서 손님들이 먹는 안주는 ‘뽀빠이.’ 30대 후반 기성세대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먹을거리다. 이 카페는 IMF이후엔 대목을 만났다.

대학가의 별미도 복고바람이다. 떡복기 오뎅 등 신세대 먹을거리가 주먹밥 보리밥 수제비 등 옛 먹을거리에 자리를 내줬다. 뽑기 솜사탕 ‘달고나’ 등 가난했던 시절의 간식도 대학가에서 쉽게 눈에 띈다.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위생문제’에 걸려 골목에서 자취를 감췄던 품목들이다.

‘우리들의 짱가’를 다시 유행시킨 데이콤 국제전화 광고. 60년대식 ‘전파채집기’를 든 탤런트 전원주씨는 ‘촌티나는’ 텀블링과 달리기를 선보이며 유학간 딸을 목청껏 부른다. 시청자들은 어렴풋이 ‘국제전화 값이 무척 비쌌던’시절을 떠올리며 가난했지만 걱정없던 지난날에 잠시 빠져든다. 개인소득 1만달러에서 거의 4천달러를 앗아간 IMF시대. 생활수준이 10년전으로 떨어지면서 사회 전반에 복고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생활형편이 어려워지니 ‘장롱속의 내복을 꺼내입듯’ 자연스럽게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리는 것이다.

복고바람이 가장 거센 곳은 단연 방송이나 광고물 등에서다. SBS서울방송의 ‘장수퀴즈’, MBC의 ‘육남매’ 등이 대표적 사례. 코미디물에도 복고풍 부위기를 연출하는 코너가 잇따른다. 60년대식 청춘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OB라거’, 삼성전자의 ‘또하나의 가족’광고시리즈도 같은 류. 복고열기에 힘입어 ‘복고마케팅’에 승부를 거는 기업들이 많아졌다.

한창수(韓昌洙)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어느 사회, 어느 누구에게나 과거에 대한 기억은 존재하며 이를 자극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마케팅기법”이라고 지적한다. TV드라마 ‘아들과 딸’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것도 복고열기에 힘입은 바 크다.

IMF시대 되살아난 복고풍 열기를 경제성장이 유일목표였던 우리사회의 ‘집단적 반성’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러나 문화평론가 김성기씨는 “대중의 위안기능도 크지만 자칫 전망부재와 현실감을 놓칠 우려가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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