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남찬순/미국 이긴 북한농구

  • 입력 1998년 6월 2일 19시 45분


▼냉전체제가 붕괴되고 세계가 화해 분위기로 돌아가던 91년 여름 북한 축구팀이 한 민간단체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워싱턴DC의 로버트 케네디 경기장에서 열린 시합에서 북한팀이 2대1로 이겼다. 경기가 끝난 후 북한팀 단장은 말했다. “울었디오. 미국 땅에 조선인민공화국 깃발이 올라갈 줄을 어찌 상상했겠습네까.” 북한팀은 ‘미국팀’이 아니라 미국을 이겼다며 흥분했다.

▼이번에는 미국대학선발 농구팀 2진이 평양을 방문해 북한 국가 농구팀과 시합을 가졌다. 북한 중앙방송은 북한 선수단이 44점이라는 압도적인 우세로 ‘타승(打勝)’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의 경기를, 그것도 승전보를 전하는 북한당국의 태도에는 카타르시스가 진하게 묻어 있는 것 같다. ‘미제국주의자’를 ‘까부수었다’는 사실이 북한 주민들에게는 엄청난 사건으로 보일 것이다. 체제불만을 무마하는데 크게 기여했을 것이 틀림없다.

▼8월에는 미국여자 농구팀도 평양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한다. 대외적으로 폐쇄정책을 취하고 있는 북한당국이 이제 ‘스포츠의 문’만은 개방할 자신이 생긴 것일까. 김정일이 특히 농구를 외화벌이 사업으로 장려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미국과 교류 폭을 넓히는 데는 스포츠만큼 효과적인 수단이 없을 것이다. 스포츠교류는 복잡한 국가간의 관계에 구애됨이 없이 민간단체 주선으로도 가능하다.

▼스포츠는 이념과 사상의 장벽을 허무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70년대 초반 미국과 중국의 핑퐁외교는 결국 양국간 국교수립의 계기를 만들었다. 탁구공이 중국의 만리장성을 허문 것처럼 농구공과 축구공도 평양과 워싱턴을 오가며 북한의 폐쇄장벽을 깨고 개혁 개방의 길을 열기 바란다.

남찬순<논설위원〉chans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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