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위안부 할머니의 눈물

  • 입력 1998년 5월 29일 19시 39분


“타국땅에서 한많은 56년을 보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혈육과 함께 살다 고향에 묻힐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중국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지 56년만인 지난 2월 입국한 하옥자(河玉子·73)씨.

이산가족을 찾아주는 라디오방송을 듣고 꿈에도 그리던 오빠와 여동생을 찾아 2월 고향땅을 밟은 하씨는 불법체류로 추방되는 자신의 처지를 눈물로 호소했다. 법무부가 조선족이 아닌 중국 국적의 하씨에게 국적회복 불가판정을 내려 하루아침에 불법체류자로 전락한 것.

경기 안성의 한 가난한 농가에서 1남2녀중 둘째딸로 태어난 하씨는 5세때부터 부모와 헤어져 전국을 떠돌며 남의집살이로 끼니를 때웠다.

17세 꽃다운 나이. 부산에서 남의집살이를 하던 하씨는 강제로 중국 지린(吉林)성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갔다.

45년 해방은 됐지만 만신창이가 된 몸 때문에 고향에 돌아갈 수 없어 중국에 눌러 앉았다. 옌지(延吉)의 벌목장에서 밥짓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던 하씨는 일터에서 한 조선인을 만나 아들까지 낳았다.

83년 현지 라디오방송에서 꿈에 그리던 오빠 명수씨(82)와 여동생 복순씨(71)의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기쁨의 눈물도 잠시. 손녀(15)에게 악성뇌종양이라는 병마가 찾아 들었다. 딸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위장이혼을 한 뒤 한국으로 들어와 막노동판을 전전하는 아들 부부를 따라 하씨도 귀국을 했지만 고국은 하씨 가족의 아픔을 외면한 채 방문기간 만료를 이유로 강제출국을 종용했다.

“가족과 함께 고국에서 여생을 마칠 수만 있다면….”

서울 마포구 만리동의 1.5평 남짓한 단칸방에는 고국의 모진 냉대에 서러움을 참지 못하는 한많은 ‘조선 여인’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윤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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