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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5월 25일 07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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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초겨울 햇살이 유난히 화사하던 날 우리 노부부는 천안으로 이사했다. 3남매를 모두 결혼시키고 노년의 삶을 보내기 위해서…. 강산이 몇번이나 변하도록 오래 살아온 고향같은 서울을 떠나오던 날 너무도 서운해 몇번이고 뒤를 돌아보곤 했다.
처음 이사왔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고 서먹서먹해 정이 들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러나 몇달 살아보니 공기좋고 조용하고 교통이 복잡하지 않아 천안(天安)이라는 이름대로 하늘 아래 가장 살기 편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바삐 살 때는 몰랐는데 낯선 지방에서 단둘이 살게 되니 남편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기도 했다.
우리 부부는 함께 등산하고 약수를 길어 오고 가벼운 운동도 하며 오랜만의 여유를 즐겼다. 그러던 무렵 눈동자가 유난히 까만 백일을 갓 넘긴 외손녀가 우리 품안으로 들어왔다. 그때부터 우리는 여유있는 생활을 잠시 접어둔 채 외손녀 기르는 일을 본업으로 삼았다. 시간맞춰 우유를 먹이고 우유병을 소독하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목욕을 시키고….
하루가 다르게 포동포동 살이 오르고 나날이 새로운 행동을 익히며 변화하는 손녀딸을 보면서 생명의 신비로운 질서를 새롭게 느꼈는데 세 돌을 몇달 앞두고 제 엄마 품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이별의 아픔으로 소리없이 울었고 다시 옛날처럼 등산을 하고 약수를 길어오고 운동도 하면서 살고 있다. 산에 오르면 특히 새순처럼 돋아나는 손자 손녀들의 모습이 스쳐간다. 아무쪼록 오염되지 않은 자연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고 평탄한 삶을 살아가야 할텐데….
이금희(충남 천안시 쌍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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