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찾기]「하늘」서 보낸 사랑의 초청장

  • 입력 1998년 5월 22일 19시 44분


“바로 며칠전까지 전화를 붙들고 한장이라도 더 표를 파시려 애쓰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이제는 하늘에서 이 음악회를 내려다 보시겠지요.”

21일 저녁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나환자 봉사단체 ‘라자로 돕기회’가 주최하는 자선음악회 ‘그대 있음에’가 여느 해와 다름없이 열렸지만 전좌석을 꽉 채운 청중들의 표정은 유난히 숙연했다.

공연 시작 전 무대에 오른 봉두완 라자로돕기회 회장은 엄숙한 표정으로 추모사를 읽어내려갔다. 지난 28년간 라자로 마을을 운영하며 국내외 나환자들에게 봉사의 삶을 펼친 이경재신부가 연주회 열흘 전인 11일 선종(善終)한 것.

평소 도움을 준 이들에게 그가 보낸 음악회 초청장은 선종 이후에 도착했다. 고인이 ‘하늘에서 보내는 편지’가 된 것이다.

26세 때 처음 나환자돕기에 투신한 고인은 70년 경기 의왕의 성 라자로 마을에 부임, 지금까지 70만명의 나환자들에게 새 삶을 찾아줬다. 국내외 후원회원만도 5만명.

단순한 모금에 그칠 일이라면 바자 등 다른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생전에 고인은 음악을 통한 영혼의 순화도, 어려운 사람과 함께 하는 거룩한 마음도 모두 같은 자리에서 이루어지길 바라며 16년 동안 한결같이 음악회를 마련해왔다.

연주회 앙코르 순서로는 전 성악연주진이 무대에 올라 청중과 함께 성가 ‘주여 임하소서’를 합창했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배가 침몰해갈 때 선상 연주단이 끝까지 연주했던 멜로디. 일부 청중은 눈물을 글썽이며 목이 메어 끝까지 따라부르지 못했다.

“맡은 일에 너무나 열심인 분이셨어요. 오늘 이 자리에 와보니 고인의 귀한 뜻이 커다란 세계를 열어놓은 것 같습니다.”

원불교 서울교당 박청수교무는 26년간의 교우를 회상하면서 “그분이 펼친 봉사의 삶은 우리 모두의 정신에 살아 더 큰 꽃을 피워낼 것”이라고 말했다.

〈유윤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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