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광형/벤처기업 키우려면…

  • 입력 1998년 5월 18일 20시 06분


“벤처기업 육성책이 쏟아져 나오지만 우리가 새로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작년 매출액의 3분의 1을 보증해줍니다. 그리고 집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다소 추가해줄 수 있습니다.”

기술을 평가해 신용담보를 제공해준다는 기술신용보증기금 담당자가 얼마 전에 벤처기업가들을 모아 놓고 한 말이다. 기술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자료를 펼치려 하자 나온 이야기는 더욱 기가 막혔다.

▼ 담보제공 요구 말아야 ▼

“사업이란 자기 돈으로 하는 것입니다. 돈을 빌려 해보겠다는 생각은 아예 마십시오. 새로 창업해서 작년 매출이 없어도 할 수 없습니다.”

흔히 벤처기업의 본고장으로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꼽는다. 그런데 무엇이 실리콘밸리를 만들었고 벤처기업을 만들었을까. 물론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벤처정신과 기술이다. 그러나 거기에 벤처자본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면 벤처자본의 어떤 특성 때문에 가능했을까. 그것은 좋은 기술을 가진 벤처기업을 찾아 투자할 수 있는 안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자본 지원을 받아 회사를 성공시킬 수 있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자본 고갈로 인해 중단함으로써 더 큰 피해를 예방할 수 있었다. 그곳의 벤처자본회사에는 우수한 기술 전문가들이 포진하고 있어 유망기업을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같이 벤처기업이 자생적으로 발전할 때까지 기다릴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그래서 벤처자본의 역할을 정부기관에서 많이 담당하며 각종 편의시설과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관들이 돈만 가졌지 기술을 알지 못하고 있는데 문제가 있다. 그러니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도 모르고 앞서와 같이 복통 터지는 소리나 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보화 촉진 기금의 경우를 보자. 기술 심사에서 선정이 되면 연리 6.5%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융자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선정이 된다 해도 담보를 제공해야 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부동산이라도 많이 있으면 좋겠지만 벤처기업하는 사람이 어디 그런 경우가 많겠는가. 기술신용보증기금과 은행을 찾아다니며 까다로운 절차와 31개 서류에 돈과 시간을 바치고 나면 은행금리와 같아져버린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모순된 일을 당하면 항의하라고 했지만 눈밖에라도 나면 그나마도 없어지니 말도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이라도 효과적인 지원책을 펴려면 기술전문가들에게 의뢰해 엄정하게 평가하도록 해야겠다.

그런 다음에는 불안해하지 말고 과감하게 지원해야겠다. 현재와 같이 기술심사를 해놓고 다시 담보를 요구하는 어정쩡한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원래 벤처기업에 투자한다는 것은 실패하면 전부 없어질 각오를 한다는 것이 아닌가.

아울러 현대산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SW)산업에 대한 인식을 하루빨리 바꾸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현재 정부에서는 SW 회사를 서비스업으로 구분하고 있다. 서비스업은 술집이나 유흥음식점들이 포함되는 분류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규제가 많다. 지식을 생산하는 업종인데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서비스업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게다가 제조업으로 분류해주는 대가로 세무서 직원과 회사 사이에 불미스러운 일도 생기고 있다.

▼ SW산업 제조업 대우를 ▼

SW 회사들을 술집과 같이 대우하면서 우리가 21세기를 논할 자격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고 해야겠다.

벤처기업을 하는 사람들은 고정관념을 깨고 있는 사람들이다. 벤처기업을 키워 산업구조를 개선하고 고용을 창출한다는 근본 취지를 살리고 효과적으로 육성하려면 정부와 일선 담당자도 벤처정신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한다. 부디 더이상 새로운 지원책이나 지원자금은 없어도 좋으니 제발 옥죄고 군림하여 기술개발할 시간을 빼앗지나 말았으면 좋겠다는 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주기 바란다.

이광형 <한국과기원교수·전산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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