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육17/횡성 덕고초교]수학 600단계「눈맞춤 교육」

  • 입력 1998년 5월 11일 09시 50분


“교장선생님, 저희들에게 너무나 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새 봄바람이 매우 차요. 학교를 잘 이끌어 가셔야 하니까 몸조심하셔서 감기에 걸리지 마세요. ―수정 올림.”

강원 횡성군 덕고초등학교 교장실 게시판에 붙어있는 편지글 중 하나다.

이 학교 교장실은 상담실을 겸하고 있다. 세평 남짓한 교장실 입구에는 ‘상담실’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고 한쪽 벽에는 흰 게시판이 있다. 학생들은 이 게시판에 교장에게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적어 놓는다.

학생들의 교장실 출입은 물론 자유. 누구든지 지나가다가 김학선(金學先·56)교장이 앉아있는 걸 보면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

그림을 그리다가 크레파스가 떨어지면 교장실로 달려가 “선생님, 빨간색 크레파스 남은 것 없어요”하고 묻는 학생도 있을 정도.

교장을 비롯한 교사와 학생들이 이처럼 가까운 이유는 우선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전교생 42명에 김교장을 포함해서 교사 6명이 전부. 모든 교사는 전교생 개개인의 가족상황에서부터 성격 특기 장래희망 등을 손바닥 들여다 보듯 훤히 꿰고 있다.

학생수가 너무 적어 덕고초등학교는 2,3년 전만 해도 폐교 위기에 몰렸었다. 이농현상으로부모들이하나둘 도시로 떠나는 바람에 84년 1백90명이던 학생이 96년에는 37명으로 줄어들었다.

교육청에서 통폐합 보고서를 내라고 하자 교사와 주민들은 47년 개교 이래 50년의 전통을 이어온 학교를 문닫을 수 없다며 학교를 살릴 방법이 없을까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바로 열린교육이었다.

“학생이 명실상부하게 주인인 학교로 만들자. 도시학교보다 훨씬 좋은 학교로 만들어 자식교육 때문에 이사하겠다는 말이 안나오게 하자. 떠났던 학생들이 다시 돌아오게 만들자.”

이때부터 전통적인 학습환경을 과감히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교실에는 학생 개개인의 체형에 맞게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회전의자를 설치하고 특별교실에는 학생들이 언제나 마음껏 노래할 수 있는 노래방 기기를 설치했다.

학습목적에 따라 오디오 세트, 29인치 TV, 비디오카메라, 펜티엄 컴퓨터 등을 설치해 도시학교보다 나은 시설을 갖췄다. 이를 위해 다른 부문의 운영비 지출은 과감히 줄였다.

복도가 온통 교육기자재로 복잡한 이유를 김교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모든 교육시설은 학교에서 가장 키가 작은 학생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복도에 놔둔다는 것이 학교방침입니다.”

인체모형 컴퓨터 어항 삼발이 장구 지구의 등 교육에 필요한 온갖 기자재가 복도에 널려 있다. 학생들이 만지다 부서지고 닳는 것은 창고에 처박아놓아 먼지 쌓이는 것보다 낫다고 교사들은 생각한다.

이 학교는 수업 종소리가 없다. 80분 범위 내에서 교사가 자율적으로 수업시간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수학은 학년 구분이 없다. 1∼6학년 과정을 6백단계로 나눠 개개인이 현재 몇단계에 있는지를 알려주고 단계에 맞게 수준별로 교육하고 있다.

일주일에 3시간인 체육수업 중 1시간은 전교생이 함께 운동장에서 수업을 받는다. 학년 구분없이 편을 갈라 축구시합이나 줄다리기를 하기도 하고 동네 대항 계주를 할 때도 있다.

점심시간이 되면 전교생이 특별교실에 모여 교장 교감 교사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

학교생활에 재미를 붙인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도 학교를 떠나지 않는다. 미술교실 어학교실 탁구교실 등 학교에서 마련한 특별활동 프로그램에 참가한 뒤 해가 질 때가 돼서야 집으로 돌아간다.

6학년 김세라양은 학교에 하루종일 있어도 심심한 줄 모른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공을 차다가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해요. 실습장에 가서 텃밭을 가꾸는 일도 재미있어요.”

이같은 노력의 결실로 이제는 다른 지역 학교에서 전학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교생 42명 중 18명이 외지에서 온 학생들이다.대전 울산 춘천 홍천 여주 등 전국에서 ‘열린교육’을 받기 위해 찾아온 것.

방문객도 줄을 잇고 있다. 3월 개학 이후 학교에 다녀간 사람만도 전국의 교사 교육위원 학부모단체 등 90개팀 9백명을 넘어섰다. 덕고초등학교 0372―43―3600

〈횡성〓윤종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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