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708)

  • 입력 1998년 4월 28일 07시 09분


제12화 순례자들의 오후〈4〉

세번째 순례자의 이야기.

나는 이미 여러 차례 메카를 순례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길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디로 가면 지름길이 나오는가 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디로 가면 물을 구할 수 있는가 하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순례자들은 늘 내 뒤를 따라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였습니다. 나는 영묘에 참배하고 예언자 모하메드의 묘를 찾아보리라 마음먹었습니다. 나는 예언자의 묘까지 가는 길도 훤히 꿰고 있었으므로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길을 잘 알고 있으니까 혼자서 가리라. 사람들과 함께 가는 것보다 이번에는 호젓하게 혼자서 가는 것도 좋지.”

이렇게 생각한 나는 길을 떠나 알 카디샤까지 혼자서 갔습니다.

알 카디샤에 이르자 나는 하룻밤을 묵어가기 위하여 사원을 찾아들었습니다. 순례자들을 위해서는 알라의 집보다 더 편안한 잠자리는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사원의 벽 모퉁이에는 문둥병에 걸린 사내 하나가 앉아있었습니다. 온통 진물이 흘러내리고 있는 그 사나이를 보자 나는 역한 기분을 견딜 수 없어 침이라도 뱉고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내는 뜻밖에도 나를 알아보고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오, 당신은 아부 알 하산이 아니십니까?”

그가 이렇게 말하자 나는 내심으로 깜짝 놀라며 되물었습니다.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죠? 나는 당신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그러자 문둥이 사내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순례자라면 누구라서 당신을 모르겠습니까? 메카로 가는 길을 당신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지요.”

이렇게 말하고난 그는 덧붙여 말했습니다.

“아부 알 하산님, 제발 부탁이니 나를 거기까지 데려가 주십시오.”

그러자 나는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길동무가 싫어서 일부러 혼자 길을 떠났는데, 이제 와서 하필이면 문둥이와 동행할 수야 있겠어!”

이렇게 생각한 나는 곧 그 문둥이 사내를 향해 말했습니다.

“나는 누구이고 동행하는 건 질색이오.”

내 말을 들은 상대는 입을 다물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튿날 아침 나는 일찌감치 길을 떠나 알 아카마에 당도했습니다. 거기까지 갔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었으므로 나는 다시 사원을 찾아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원 안으로 들어선 나는 뜻밖의 광경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사원의 벽 모퉁이에는 어젯밤 알 카디샤에서 만난 바 있는 그 문둥이가 어젯밤에 보았을 때와 똑같은 자세로 앉아있었던 것입니다.

“알라께 영광 있으라! 이 사나이는 대체 무슨 수로 나보다 먼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내가 마음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때 예의 그 문둥이 사내는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습니다.

“어서오세요, 아부 알 하산님. 신께서는 약한 자를 위해 강한 자도 깜짝 놀랄 만한 조화를 부려주신답니다.”

나는 말문이 막혀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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