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705)

  • 입력 1998년 4월 24일 07시 25분


제12화 순례자들의 오후〈1〉

“현세의 임금님, 세 사람의 순례자가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그들이 길을 가면서 나눈 이야기들을 엿들어보기로 합시다.”

샤라자드는 샤리야르 왕에게 이렇게 다음 이야기를 시작하였으니, 사랑하는 나의 독자들이여! 나는 이제 그녀가 왕에게 한 이야기를 여러분께 들려드린다. 들어보기로 하자.

첫번째 순례자의 이야기.

예언자 한 사람이 기슭에 샘이 솟고 있는 산 꼭대기에 조그마한 예배소 하나를 세우고 혼자 정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산꼭대기에 혼자 앉아 지상하신 알라의 이름을 외기도 하고, 샘가로 찾아드는 사람들을 굽어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말을 탄 사내 하나가 샘가로 오더니 말에서 내리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말에서 내린 그는 목에 걸고 있던 돈자루를 벗어 옆에 내려놓고는 물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한참 쉬다가 다시 말 위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는 샘가에 벗어둔 돈자루를 깜박 잊어버리고, 그것을 그냥 둔 채 가버렸습니다.

그로부터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 때, 또 다른 사나이 하나가 물을 마시러 왔습니다. 물을 마시려던 두번째 사나이는 샘가에 놓여 있는 돈자루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그 속에 금화가 가득 들어 있다는 걸 알자 물을 마시기가 바쁘게 그 자루를 들고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 때, 이번에는 나무꾼 하나가 무거운 나뭇짐을 짊어진 채 샘가로 왔습니다. 나무꾼은 나뭇짐을 내려놓더니 물을 마시기 위해 샘가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돈자루를 잊어버리고 갔던 첫번째 사나이가 허겁지겁 말을 타고 되돌아왔습니다.

“여기 있던 돈자루 못봤어?”

첫번째 사나이는 나무꾼에게 물었습니다. 영문을 알 리 없는 나무꾼은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니오. 나는 아무것도 못봤어요.”

그러자 말을 타고 있던 사내는 칼을 뽑아들더니 다짜고짜 나무꾼의 목을 베어버렸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나무꾼의 옷이며 나뭇단을 뒤져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그는 그대로 돌아가버렸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았던 예언자는 하늘을 우러러 소리쳤습니다.

“오, 주여! 돈을 훔쳐간 것은 두번째 사나이인데, 아무 죄도 없는 세번째 사나이가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이에 하늘에서부터 알라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우주의 법도는 그대가 알 바 아니니, 그대는 오직 수도에만 전념하라. 말을 타고 왔던 첫번째 사나이의 아비는 일찍이 두번째 사나이의 아비에게서 일천 디나르의 돈을 강탈해간 바 있어서 나는 그 아들에게 아비의 돈을 돌려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나무꾼으로 말할 것 같으면, 첫번째 사나이의 아비를 살해한 바 있는데, 나는 그 아들로 하여금 아비의 원수를 갚게 해 준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예언자는 감동에 찬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오, 영광된 분, 당신 이외에 신은 없습니다! 당신이야말로 모든 비밀을 알고 계십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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