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창]김영웅/나이지리아 사기단의 「표적」

  • 입력 1998년 4월 20일 19시 33분


서부 아프리카의 경제대국이자 세계 9위의 산유국인 나이지리아. 그러나 우리나라 무역업체들에는 무역 사기 사건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나는 이곳에 부임한 지 한참이 지나서도 왜 많은 한국 사람들이 나이지리아 사기단에 피해를 당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특히 사건의 내용이 아이들 동화처럼 허무맹랑해 조금만 이성적 판단이 가능하면 피해를 볼 수 없는 수준이라고 들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나에게는 매달 평균 2,3회 정도의 사기 여부 확인을 요청하는 국제전화가 걸려온다. 대부분은 한국으로부터의 전화지만 미국 뉴질랜드 호주 등의 한국교포 전화도 있다. 이들은 처음에는 당당히 문의를 하다가도 정상적인 비즈니스인가를 물으면 금세 꼬리를 내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의문을 풀어준 사건이 발생했다. 말로만 듣던 사기단이 나에게도 접근했던 것이다. 2월 나이지리아 육군 장교라는 사람이 나에게 면담 요청을 해왔다.

에드워드라는 이름의 그는 육군 복장에 계급장, 베레모까지 쓰고 경례를 한뒤 자기 소개를 시작했다. 그는 서부아프리카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시에라리온 쿠데타군을 진압하고 1주일전 귀국했다고 했다.

그러더니 목소리를 한 톤 낮추면서 “토벌작전 수행중 대통령궁에 진입하면서 커다란 나무상자 1개를 노획했는데 미화 1백달러 짜리로 가득차 있었으며 언뜻 보아도 5백만달러는 될 것 같았다”고 본론을 꺼냈다.

귀국할 때 개인 이삿짐으로 들고 와 열어보니 미화 1백달러마다 대통령 문양이 스탬프로 찍혀 있었다며 스탬프를 제거하고 해외로 반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1백만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매우 점잖고 세련된 말투로 열심히 사업 제안을 되풀이했지만 결국 내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싱긋 웃으며 사무실을 나갔다. 그를 면접한 뒤에야 나는 사기 피해의 진상을 알게 되었다. 일확천금에 대한 환상이야말로 사기 사건의 진정한 원인이라는 것을….

그후 며칠동안 내 머리엔 한국의 많은 사건과 신문 기사 제목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신도시 투자 최적지, 서해안 땅값 폭등, 4백억원 뇌물 수수….

김영웅(KOTRA 라고스 무역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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