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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3월 16일 20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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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맞을! 젠장맞을!”
자신이 전염병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오빠는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그러한 오빠를 굽어보며 검은 옷의 사내는 슬픔에 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가엾은 형제여! 마지막 소원이 있으면 말해보라.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해주겠다.”
그러자 오빠 또한 슬픔에 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소원이 하나 있긴 하지만 시간이 없을 것 같구려. 너무 늦었어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사실은 가장 빠른 때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어서 소원이나 말해보게.”
검은 옷의 사내는 안타까운 듯이 다그쳤습니다. 오빠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습니다.
“사실은, 마지막으로 꼭 한 번 보고 싶은 여자가 있소. 그 여자를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지만, 도저히 그럴 시간이 없을 것 같소. 그 여자는 지금 바그다드에 가 있을 테니 말이오.”
오빠가 이렇게 말하자 검은 옷의 사내는 말했습니다.
“형제여! 어쩌면 그대의 소원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 잠시만 기다려 주게.”
이렇게 말한 사내는 급히 어딘가로 갔습니다. 약 한 시간쯤 뒤에 그는 세상에 둘도 없을 훌륭한 경주마 한 마리를 끌고 돌아왔습니다.
“어쩌면 이 말이 그대의 소원을 이루게 해줄지 모른다. 이 말은 이 도성을 다스리는 왕의 것으로서 보통 말의 열 배나 빨리 달릴 수 있다. 왕은 이 말을 너무나 아끼기 때문에 누구의 손에도 맡긴 적이 없다. 그런데도 왕은 끝내 이 말을 나에게 내어주었다. 타국 사람인 그대가 재난에 빠진 이 도성에 와 하루도 쉬지 않고 시체를 매장하던 중 마침내 병에 감염되었다는 말을 하자 왕도 크게 감동하여 자신의 애마를 선뜻 내어준 것이다. 이 말을 타고 가면 사흘 안에 바그다드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대는 마지막 소원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알라께서 그대의 목숨을 사흘만 연장시켜 주신다면 말이다.”
그러나 오빠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습니다.
“내가 비록 사흘 안에 죽지 않고 바그다드까지 갈 수 있다고 해도, 나는 그 여자를 만날 수 없소. 자칫 잘못하면 그녀도 병에 옮아 나같은 신세가 될 테니까 말이오.”
오빠가 이렇게 말하자 검은 옷의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딴은 그렇군. 그렇지만 형제여, 그런 문제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그 여자를 만나더라도 검은 옷을 입고, 검은 천으로 낯을 가리고 있으면 병은 잘 옮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그대가 죽은 뒤에라도 절대로 그대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검은 천을 벗기지 말고 매장해 달라고 부탁해 두게. 그렇게 하면 아무 일 없을 걸세.”
이렇게 말한 검은 옷의 사내는 오빠를 일으켜 주었습니다. 그때 이미 오빠의 몸은 불덩어리처럼 뜨거웠습니다. 어느새 병은 오빠의 온몸으로 번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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