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손병두/기업을 「換亂 속죄양」 삼지말라

  • 입력 1998년 3월 2일 20시 18분


최근 기업이 진 외채에 대해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기업이 끌어다 쓴 외화 자금이 상환 위기에 몰리면 제2의 환란(換亂)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대두되고 있다. 또 일각에서는 아예 외환 위기의 장본인이 기업이라고 단죄하는 듯한 분위기다.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는 기업 외채의 실상과는 거리가 먼 과장된 주장이다.

▼ 정부감독아래 외화 운용 ▼

그동안 기업이 국내에서 조달한 외화 자금은 4백23억달러로 용도가 시설재 수입자금 등으로 제한돼 있어 방만하게 운용될 여지가 거의 없었다. 이는 그동안 정부가 직접 규제하고 감독한 일이다. 현지 금융의 경우에도 해외 금융기관으로부터 엄격한 심사를 거쳐 자금을 조달했기 때문에 현지에서 자금을 마음대로 유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90년대 들어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 추세에 부응해 국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해외 투자를 했고 이 과정에서 이용한 현지 금융의 절대 규모가 외환 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으나 이 부분이 부실화했다는 증거는 없다.

우리 기업의 현지 투자 프로젝트는 대부분의 경우 국내 기업의 글로벌 생산체제에 편입되어 지금도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환란으로 일컬어지는 오늘의 외환 위기를 초래한 근본 원인을 굳이 따진다면 90년대 들어 6백억달러가 넘게 급증한 누적 경상수지 적자가 가장 큰 원인이다.

미국외 일부 선진국이 90년대 비슷한 규모의 누적 적자를 기록했으나 이들 나라는 90년대 초반 이후로는 경상수지가 개선되는 추세로 반전되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산업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는데도 거품 경제에 편승한 소비 증가로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경제개혁을 통해 고비용 구조를 해소하지 못해 국가경쟁력이 정체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선진국이 된 양 착각하고 행동한 정부와 기업 가계 모두가 책임을 공유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또 개방 경제하에서는 경제 주체들의 리스크(위험)관리가 중요한데 이 부분의 후진성이 외환 위기를 촉발한 직접 요인이 되었다. 먼저 금융기관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나라별 장 단기 금리차를 이용한 영업에 치중한 결과 대출자산의 부실화와 자금 흐름의 단절을 초래해 외환 위기를 자초했다.

금융기관은 그동안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1천억달러에 이르는 자금을 조달하여 이의 절반인 5백억달러를 해외에서 운용했다. 이중 3분의 1정도인 1백50억달러를 국제 자본의 흐름과는 반대로 대외신인도가 하락하고 있는 동남아 등 개도국에 투자해 부실을 초래했다.

아울러 정책당국의 위기관리 능력에 큰 문제가 있었다는 세계은행의 최근 지적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외환 위기를 당사자가 아닌 관점에서 분석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기업의 연쇄 도산과 금융기관의 부실화 현상이 심화하고 이웃 동남아의 외환 위기로 가까운 시일내에 위기 도래가 예고되고 있었는데도 당시 정부는 이를 감지하지 못한 채 적절한 사전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 여론몰이식 단죄는 곤란 ▼

물론 외환 위기를 유발한 과정에서 기업도 예외일 수 없으며 그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기업을 외환 위기의 주범으로 몰아 속죄양으로 삼는 것은 문제의 재발을 막는 교훈을 얻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외환 위기는 총체적인 국가 부실의 결과이다. 지난 잘못을 냉철하게 되짚어 보는 것은 바람직하나 어느 일방에 대하여 여론몰이식 단죄를 내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손병두(전경련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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