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43)

  • 입력 1998년 2월 18일 09시 19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111〉 “이 일을 어쩌면 좋지? 그렇지만 아씨, 이 정도의 봉변으로 그친 것을 알라께 감사합시다!” 노파는 저를 부둥켜안은 채 울면서 말했습니다.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제발 정신을 차리세요, 아씨! 이 일이 세상에 알려져 망신을 당하기 전에 어서 댁으로 돌아갑시다. 무사히 댁에 돌아가시면 아프다고 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계세요. 아니, 그보다 먼저 목욕부터 하세요. 여자의 몸이란 목욕을 하고나면 씻은 듯이 깨끗해진답니다. 다만 한가지, 입술에 난 상처가 문제인데, 물린 데 잘 듣는 가루약과 고약을 갖다드릴게요. 아무리 늦어도 사흘이면 나을 수 있을 거예요.” 노파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만 저는 이미 넋이 빠져 있었습니다. 얼마 후에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습니다만, 말할 수 없이 슬프고 무서웠습니다. 겨우 집에 도착한 저는 우선 목욕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프다는 핑계로 자리에 누웠습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으려니까 정말이지 저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밤이 되자 남편이 돌아와 말했습니다. “여보, 오늘 외출을 하더니 대체 웬일이오?” “기분이 좋지가 않아요. 머리가 몹시 아파요.” 그러자 남편은 촛불을 켜들고 와서는 저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입술에 상처는 어찌 된 거요?” 남편이 이렇게 묻자 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몰라 하다가 말했습니다. “오늘 천을 사러 시장엘 나갔다가 나무를 실은 낙타한테 받혔어요. 나뭇가지가 베일을 찢고 들어와 제 입술 가장자리를 찔렀어요. 정말이지 길거리가 너무 좁아요.” 그러자 남편은 외쳤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에 시장한테 가서 요구하겠소. 온 바그다드의 나무꾼들을 모두 교수형에 처하라고 말이요.” 이 말을 들은 저는 펄쩍 뛰며 말했습니다. “오, 여보! 제발 부탁이니, 엉뚱한 사람에게 벌을 주어 당신 마음을 괴롭히지 마세요.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나귀를 타고 가다가, 나귀가 발길질을 하는 바람에 땅에 떨어졌어요. 그 순간 나무 꼬챙이인지, 유리조각에 부딪혀 상처를 입은 것뿐이에요.” 이 말을 들은 남편은 부르르 몸을 떨며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내일 대신 쟈아파르를 찾아가겠소. 내 아내가 다친 이야기를 하고 온 바그다드의 당나귀몰이꾼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라고 요구하겠소.” 저는 너무나 당황하여 말했습니다. “저의 상처 때문에 그 사람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말인가요?” 이렇게 말한 저는 잠시후 덧붙였습니다. “제가 상처를 입은 것은 알라의 뜻이랍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의 표정이 아무래도 수상쩍게 여겨졌던지 남편은 저에게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횡설수설하다가 마침내 와들와들 몸을 떨었습니다. 그러던 끝에 저는 말문이 막혀 말을 더듬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뜻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으므로 저는 다시 한번 말했습니다. “알라의 뜻으로 다쳤을 뿐이에요.” 이렇게 되자 남편은 마침내 사태를 눈치채고 소리높이 부르짖었습니다. “너는 맹세를 깨뜨리고 말았구나!”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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