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김정렬/아버지와의 내기바둑

  • 입력 1998년 2월 5일 07시 32분


아버지와 바둑을 두 판 두었다. 아버지의 따분함을 없애주자는 마음에서였다. 처음 석 점을 아버지가 깔고 두었다. 당신은 초반부터 밀리면서도 모르고 계신 눈치였다. 항상 그렇듯이. 그래서 두지 않으면 안될 수를 모른체 놔두고 중요하지 않은데 수를 두어번 두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여전히 맥을 찾지 못하다 몇 수를 주고받고서야 비로서 발견한듯 기쁘게 그 곳에 돌을 놓는다. 그러나 여전히 나의 우세였고 당신은 중요한 곳을 여전히 방관한다. ‘다행히’ 나의 실수로 당신이 ‘대마’를 잡고 승리. 그러면서 “정렬이 바둑은 별 수 없어”하며 은근히 말씀하신다. 첫판 1천원 내기에서 어이없이 진 나는 말동무 반, 내기 반의 심정으로 다시 도전장을 냈다. 당신이 넉 점을 깔되 거금 2천원을 걸고. 본래 아버지는 6,7점을 깔고 두어야 맞수가 되는 실력이라 여유있게 기세를 몰아 갔다. 많은 중요한 수들을 양보하면서도 거금 2천원이 걸려 있던 터라 약간의 집 차이로 이기려고 했다. 그런데 나의 욕심은 화를 불렀다. 아버지의 연속되는 실수로 인해 아주 크게 이기고 말았고 당신의 얼굴은 금방 굳어졌다. ‘정렬이 바둑은 아직 별 수 없어’라는 당신의 말씀에 쐐기를 박으려 했던 나의 승부욕의 뒷맛은 너무도 씁쓸한 것이었다. 어렸을 적에 아버지께 바둑을 배우면서 한번 두번 당신을 제치고 승리할 때는 그렇게도 기뻤는데…. 예전과 달리 온통 흰머리카락을 보았기 때문이었을까. 지금의 나를 있게 하신 분. 나의 지금 모습이 첫째는 하나님 은혜요 또한 아버지의 은혜가 아니었던가. 나의 바둑 실력이 아버지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마치 제 어미의 살을 갉아 먹고 자라는 거미의 유충에 비유할 수도 있을텐데. 생각하면 내가 태어난 이후부터 나와 크게 혹은 작게 관계해 온 많은 분들의 부분 부분들로 나의 모습은 모자이크되어 있다. 당신께서 여생을 소중하고 즐겁게 보내시도록 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앞으로는 바둑의 승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않게 해야지. 김정렬(경기 파주시 금촌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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