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임규진/『그래도 희망은 있다』

  • 입력 1998년 1월 2일 20시 40분


“서울은행과 제일은행이 늦어도 2월말까지는 외국 은행에 매각될 것”이라고 재정경제원이 새해 벽두에 밝혔다. 6대 시중은행 가운데 두개가 곧 외국인 소유로 바뀐다는 얘기다. 국제통화기금(IMF)시대가 무얼 뜻하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금융계 일각에선 올해안에 국내 상장기업의 3분의 1이 외국인 주인을 맞게 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내놓는다. 한국 경제가 ‘가본 적이 없는 길’로 들어서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우리 경제는 거대한 댐의 조그만 구멍이 마침내 댐 전체를 무너뜨린 결과를 맞았다. 구멍이 난 순간부터 댐이 붕괴하기까지 이를 인식한 경제리더십은 없었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한보사건에 연루돼 수감된 아들 생각으로 아까운 시간을 허송했다. 강경식(姜慶植)전부총리는 장단기 현안을 구분하지 못한 채 ‘국가백년대계’를 논했다. 이밖에도 문제는 널려 있었다. 거품성장을 주도하며 즐겨온 재벌의 무모한 과잉중복투자, 첨단 통신설비에서 김밥장사까지 닥치는대로 손대온 문어발식 사업확장, 점쟁이 말을 믿고 수조원의 자금을 쏟아부은 재벌총수의 전근대적 경영행태, 청와대 전화 한 통과 뇌물 몇푼에 금싸라기 같은 예금을 마구 퍼준 은행들의 한심한 금융관행…. 이런 경제시스템으로 그나마 버텨온 것이 참으로 기적이었다. 한강의 기적이 별것 아니었다는 사실을 자인해야 하는 국민의 심정은 참담하지만 엎질러진 물이다. 언론 또한 정부가 발표한 외채 통계와 ‘튼튼한 경제기초론’을 순진하게 믿은 책임이 크다. 언론이라도 정부 궤변의 허실을 제대로 물고 늘어졌더라면 오늘의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근면한 근로자, 기업가정신으로 재무장하려는 경영자, 애국심에 넘치는 소비자가 있는 한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믿는다. 여기에다 고통을 스스로 먼저 떠안고 모든 경제주체들의 희생을 설득할 수 있는 리더십이 발휘된다면…. 문제는 어떻게 경제의 기본틀을 새로 짜고 운용방식을 바꿀 것인지에 있다. 외국인의 국내 기업 인수합병을 자연스런 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기업도 외국 기업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기업 근로자 소비자 모두 국제 경쟁의 한복판에 섰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새해다. 임규진<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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