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극심한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선진7개국(G7)의 조기자금지원으로 외환위기의 급한 불은 껐으나 기업자금난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어서 멀쩡한 기업까지 부도공포에 떨고 있다. 기업부도 도미노 현상도 현실로 나타나 이달 들어 서울지역에서만 하루 평균 45개 업체가 쓰러지고 있다. 한달 전에 비해 2배 가까운 숫자다.
IMF체제로 들어서면서 기업의 돈가뭄은 예상했던 일이지만 지금과 같은 최악의 상황은 겉도는 정부대책과 제 살길 찾기에만 골몰한 은행들의 이기주의 탓이다. 정부가 아무리 기업대출을 독려해도 은행들은 들은 체도 않는다. 연말을 앞두고 국제결제은행(BIS)이 요구하는 자기자본비율 8%를 맞추기 위해 신규대출을 극도로 꺼리는가 하면 대출만기 연장약속을 깨고 기업대출금을 무차별적으로 회수하고 있다. 더구나 한국은행은 IMF의 긴축요구에 따라 통화안정증권 매각을 통한 5조원의 통화환수에 나섰다.
재정경제원이 뒤늦게 부산을 떨고 있다. 은행의 후순위채권 4조4천억원을 매입해 주는 대신 기업대출을 늘리도록 강력히 촉구하고 나섰고 매일같이 자금운용실태를 점검해 기업대출 실적이 저조한 은행은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방침이다. 그같은 엄포가 얼마나 먹혀들지 의문이다. 물론 BIS 기준을 맞춰야 하는 은행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업이 망하면 은행도 온전할 수 없다. 기업도산은 은행부실화로, 은행부실화는 다시 기업도산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되풀이하면서 금융과 산업이 공멸하게 된다.
정부는 이제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직접 창구지도에 나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은행에 대한 자금지원을 늘리면서 기업대출과 연계시켜야 한다. 부실 금융기관 정리를 더 이상 미적거려서도 안된다. 몇개 은행을 없애더라도 건실한 기업은 살리겠다는 확고한 정책의지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