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내 목련 한 그루」

  • 입력 1997년 12월 22일 08시 11분


[구효서 지음/현대문학 펴냄] 불혹의 나이를 맞은 작가 구효서. 사랑하는 사람을 차마 내것으로 품을 수 없는 여인의 낮은 목소리와 한숨을 빌려 멍자국 투명하게 비치는 애잔한 연애소설 한편을 썼다. 이룰 수 없지만 그렇다고 지울 수도 없는 중년의 사랑을 그린 「내 목련 한그루」(현대문학). 「어째서 저한테 그런 갑작스런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는지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정말로 그토록 느낌과 사고따위가 작동하기도 전에, 광속보다 빠르게 날아와 박히는 화살같은 것인지. …저한테 준비된 대답은 사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철늦게 꽃망울을 터뜨린 연산홍처럼 여인은 어느날 천재지변처럼 닥쳐온 사랑에 아이엄마이자 유부녀라는 자신의 처지를 잊어버린다. 그를 눈멀게 한 남자는 하나님의 사람인 천주교의 사제. 차마 여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못하고 『당신 뒤의 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당신은 지금 모를 거야』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 그를 7년만에 그녀가 찾아나선다. 떠날 수 있기 위해 신부 앞에서 옷을 벗었던 여자. 환희와 공포에 동시에 짓눌리며 그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는 남자. 밤기차를 타고 도망치듯 제자리로 돌아온 여자는 그리움이 차오를 때마다 그 대신 자기 가슴속에 피어날 목련 한그루를 키우겠다고 다짐한다. 고전적인 플라토닉러브이자 수많은 작가들에게서 반복돼 재창조됐던 낭만적 사랑이야기. 따라서 소설의 구조나 인물묘사보다는 빨간 양철지붕집 마당의 흰 목련, 코발트블루의 원피스와 맑게 씻긴 산빛 등 예쁜 그림을 그리듯 공들인 작가의 묘사와 시각적 이미지의 속내를 음미하며 읽는 재미가 더 낫다. 저자 구효서는 작가가 되기 전 화가 지망생이었다.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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