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금동근/IMF시대의 동창회 풍경

  • 입력 1997년 12월 18일 19시 20분


「그동안 어떻게들 지냈을까」. 지방출장에서 막 돌아와 피곤한 몸을 택시에 싣고 약속장소로 향하는 K씨(29). 곧 만나게 될 얼굴들을 떠올려본다. 통 연락이 닿지 않아 잊고 지내다시피 했던 고교 동창생들. 17일 저녁에 동기 송년모임이 있으니까 꼭 참석하라던 동기회장의 연락이 어찌 그리 반갑던지. 서울대 근처 중국집에 도착했다. 대학시절 짬뽕국물에 소주를 마시며 사회를 향해 불만을 토해내고 인생을 노래하던 곳. 『야 정말 오랜만이다』 『그동안 뭐했냐. 얼굴 보기가 왜 그렇게 힘드냐』 역시 옛 친구들이다. 1년만에 보는데도 마음이 편하다. 동창생들은 벌써 이야기꽃을 한창 피우고 있었다.그런데 대화의 주제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너희 회사는 괜찮냐』 『이는 내년에 병원 개업할 수 있을까. 환율 때문에 의료기기 값이 많이 올랐다던데』 『유학간 ××이는 잘 살고있나 모르겠네』 여기도 화두(話頭)는 「국제통화기금(IMF)」이었다. 선물(先物)회사에 다니는 L씨는 요즘 회사 사정이 너무 나빠졌다며 걱정이 태산이다. 레지던트 2년차인 K씨는 『물품이 제대로 안들어와 수술도 못한다』며 병원 형편을 털어놨다. 이번 IMF태풍에 그다지 피해를 보지 않은 모그룹 사원 K씨는 비교적 편안한 얼굴이다. 자리를 함께 할 때면 단골메뉴였던 학창시절 이야기, 「도끼」 「손목」 등 별명이 등장하던 은사에 대한 이야기는 온데간데 없었다. 2차 3차로 이어져 다음날 새벽 술자리를 파할 때까지도 대화의 주제는 변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적은 용돈이 더 부족하게 됐다고 불평하는 친구에서부터 한국이 망하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는 동창생까지. 『다들 사정이 비슷하구나. 내년에는 밝은 얼굴로 볼 수 있어야 할텐데…』 택시를 기다리는 K씨의 어깨 위로 찬 겨울바람이 스쳐갔다. 〈금동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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