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김혜숙/젊은날의 「선택」

  • 입력 1997년 12월 17일 08시 16분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선택해야 할지 눈치를 보며 우왕좌왕하는 학생들을 보노라면 30년전의 일을 떠올리게 된다. 당시만 해도 선택의 폭이 좁은 데다 여자는 으레 가정과를 가는 게 보통이었다. 나 역시 별다른 고민없이 안정적이라는 가정과에 입학했다. 억지로 공부하자니 성적도 말이 아니었다. 1학기를 간신히 끝내고는 「두눈 꼭 감고 그냥 다녀. 아니면 다른 길을 찾아」 하는 심각한 고민에 휩싸였다. 어찌됐든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결단이 필요했다. 마음을 다잡아먹고나자 「과연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뭔가」 하는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문득 매일같이 학교 온실에 들러 고무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살펴보면서 흠뻑 젖어들었던 중3시절을 섬광처럼 떠올렸다. 『그래, 바로 그거야』 내가 진정 원하는게 뭔지를 알고는 주저없이 원예과를 선택해 진학했다. 꽃을 키우면서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해 겸허해지는 법을 배웠다. 이렇게 꽃과 더불어 생활해온지 30년. 주위에서는 모두 나를 부러워한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모임을 이끌어간다는 등의 사회적 지위 때문만은 아니리라. 그것은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가운데 삶의 기쁨과 환희를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진로를 고민하던 스무살 때에는 그저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만 한다는 괴로움에서 탈출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 선택이 내 인생의 의미까지 좌우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용기있는 선택이 10년이 아니라 평생을 좌우한 셈이다. 김혜숙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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