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 75조원 가운데 4조원을 줄이는 추경예산안이 마련됐다. 이렇게 되면 초긴축이 아니라 내년 예산을 올 수준으로 묶는다는 얘기다. 성장률이 당초 6.5%에서 3%로 낮추어진데다 금융구조조정 부담 등을 재정에서 떠맡아야 하는데서 오는 불가피한 조치다. 정부는 4조원의 세출(歲出)삭감과 3조3천억원의 세입(歲入)증가를 통해 「세입내 세출」이라는 재정지출계획을 다시 짠 것이다.
정부가 고심한 흔적은 역력하다. 84년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의 세출예산을 더욱 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하에서 기업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노력과 가계의 부담증가를 감안한다면 정부가 새로 짠 추경예산안은 아직도 관료 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세입내 세출」 원칙에 충실한 재정긴축은 너무 고식적이다.
정부는 세출예산을 줄이기 위해 일반행정비 10% 삭감,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 각종 사업비의 대폭 축소 등을 검토하고 있다. 또 지방자치단체 교육자치단체 정부투자기관 등의 경비절감도 강력히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일반 경상경비 삭감과 사업비 조정만으로 IMF체제에 대응하기는 어렵다.
정부조직의 과감한 개편을 전제로 한 재정의 일대개혁이 모색되어야 한다. 민간부문이 요구받고 있는 만큼 정부와 공공부문의 구조조정도 병행되어야 한다. 정부개혁이 당장 이루어질 수는 없다 해도 우선 구체적인 실행계획이라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에 대한 고통분담 요구가 설득력을 갖는다.
예산의 대폭삭감에 따른 재정투융자부문의 재조정은 어쩔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우선순위와 완급을 가리는 데 혼선과 시행착오가 있어서는 안된다. 정치적 공약사업, 선심성 또는 비능률적인 사업은 과감하게 축소해야 하지만 국가경쟁력 제고에 필요한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은 뒷전으로 미룰 수 없다. 추경예산안은 부문별 계수조정 차원이 아니라 원점에서 다시 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