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경제가 어쩌다 이지경까지…

  • 입력 1997년 11월 29일 20시 12분


▼대기업 임원들이 연말인사를 앞두고 떨고 있다. 혹독한 불황으로 올해 경영실적이 나쁜데다가 내년에는 불황의 골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대부분의 기업들이 긴축 경영을 위한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조직 축소를 위한 대량학살의 1차 대상은 바로 고도성장 과정에서 연공서열식으로 승진한 임원들이다. 회사의 존립이 위태로운 마당에 온정을 호소할 틈도 없고 책상 서랍을 정리하는 도리밖에 없다 ▼현대자동차가 이미 30%의 임원을 잘랐고 대부분의 대기업들도 연말 인사에서 임원을 30% 가량 솎아낼 계획이다. 호시절에는 삼성 현대 등 대기업 임원들은 퇴직하더라도 1차 협력업체나 2차 협력업체로 어렵지 않게 재취업할 수 있었다. 대기업 경영의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한두 직급씩 올려 모셔가는 중기업들도 많았다. 요즘에는 중소 협력업체들마저 감원에 나서는 실정이라 이력서를 보내기도 어렵다 ▼살아남은 임원들도 옛날같은 대우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경비절감을 위해 임원들의 독방을 빼앗고 비서를 현업부서로 보내는 기업들이 많다. 어떤 기업은 모든 중역 차의 운전사를 없애고 회장부터 손수 운전을 한다. 국내 굴지의 모그룹에서는 상무 이하 임원은 골프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진로그룹은 임원 연봉을 30%나 인하해 부장과 이사의 급여가 역전됐다 ▼대졸 신입사원이 이사로 승진하는데 20년이 넘게 걸린다. 올해 30대그룹 신임 이사들의 평균연령은 46세. 자녀들이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다니는 시기다. 과외비다 뭐다 돈주머니를 열어놓고 있어야 할 때에 찬바람 부는 거리로 내몰린 임원들은 억장이 무너진다. 대책없이 회사를 떠나야 하는 임원들 중에는 가슴이 답답한 화병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까지 있다는 소식이다. 「갱제」가 어쩌다 이 모양이 됐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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