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우리 정치지도자들은 거꾸로 달린다

  • 입력 1997년 11월 15일 20시 29분


▼재계에는 시도 때도 없이 정체불명의 괴(怪)자금설이 나돈다. 수천억원을 3∼4%의 낮은 금리에 장기로 빌려준다는 식이다. 얼마 전엔 수뢰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공무원 집에서 현금 1억3천만원과 수표 2천만원이 발견되기도 했다. 골프장 회원권을 사기 위해 들고온 현찰 뭉치에서 나프탈렌 냄새가 물씬 풍기더라는 얘기도 들린다.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햇빛이 두려운 돈들이 장롱으로 숨어 들어갔다는 증거다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두 전직 대통령의 천문학적인 비자금은 실명제가 실시되지 않았더라면 들춰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기업인들은 비자금을 조성해 사용하기가 무척 어려워졌다고 말한다. 이중장부 만들기가 겁나기 때문이다. 아직도 공직사회 부패가 사라지지 않고 있으나 뇌물수수는 물론 검은 돈 거래가 힘들어지고 은신처가 좁아진 것이 사실이다 ▼실명제는 부작용보다 긍정적인 기능이 훨씬 많다. 실명제 실시로 지난 4년간 국민들의 불편도 많았고 자금이 사장(死藏)되는 문제가 있긴 하나 이것은 지하경제를 뿌리뽑고 조세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겪어야 할 과정이다. 이제 정착단계에 접어든 실명제를 과소비와 경제난의 「주범」쯤으로 지목하며 이를 폐지하자는 전경련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기술개발은 뒷전이고 은행빚 얻어 문어발경영에 몰두하던 재벌들이 경제난을 실명제 탓으로 돌리는 건 말이 안된다 ▼표잡기에 정신이 없는 대선후보들까지 실명제 흔들기에 나서다니 한심하다. 정부가 제출한 실명제 보완방안과 자금세탁방지법안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국회도 문제다. 실명제 피해자는 주로 떳떳하지 못한 돈을 주무르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위해 실명제를 폐지하는 것은 개혁의 후퇴다. 국제간 거래에 뇌물을 추방하려는 반(反)부패라운드가 본격 추진되는 마당에 우리 정치지도자들은 거꾸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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