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황제」의 최후에 얽힌 스토리는 역사의 비정함을 새삼스레 일깨워 준다. 말년에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기계수리공으로 일하다 세상을 떠난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의 일생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 8월 타계한 베트남의 마지막 황제 바오 다이도 프랑스 파리의 한 서민아파트에서 쓸쓸히 생애를 마쳤다. 조선조 순종황제도 예외는 아니다. 나라를 일본에 내준 뒤 17년간 망국의 한을 씹으며 칩거하다 세상을 떠났다
▼고종황제와 명성황후 사이에서 태어난 순종황제는 1907년 33세의 나이로 즉위했으나 막상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즉위 2년전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상실한데다 주변은 친일 대신들뿐이었다. 일제의 침략 수순에 따라 재위 3년만에 한일합병을 맞은 그는 황제에서 왕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감수해야만 했다. 그 뒤 신장병 등 여러 질병으로 고생하다 1926년 4월 타계한다
▼순종황제가 임종 직전 남긴 유서내용이 최근 서울대 국사학과 이태진(李泰鎭)교수에 의해 공개됐다. 당시 미국 교포신문에 실린 그 내용은 「나 구차히 산 지 17년, 2천만 생민(生民·국민)의 죄인이 되었으니 잠시도 이를 잊을 수 없다」고 자책하면서 「한일병합은 강린(强隣·일본)과 역신의 무리들이 제멋대로 선포한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유서는 순종황제가 역사앞에 토로한 피맺힌 절규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특히 한일합병문서에 자신이 절대 서명한 적이 없음을 확실히 해 그 불법성을 증언하고 있다. 올해는 고종황제에 의해 대한제국이 선포된 지 1백년이 되는 해다. 최근 학계 일부에서는 대한제국을 재평가하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역사란 시각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치욕의 역사는 영원히 잊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