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음반가의 화두는 단연 피아노 협주곡이다. 거리의 찬바람에 마음의 온기까지 빼앗긴 저녁, 색깔이 다른 세 거장의 열연이 가슴속을 훈훈하게 한다.
머레이 페라이어는 아바도 지휘, 베를린 필하모니 협연으로 슈만의 협주곡(소니)을 선보였다. 정돈된 타건과 안정된 호흡으로 밀고나가는 탄탄함이 믿음직하며 차가운 광택을 머금은 피아노 음색과 균형잡힌 관현악의 음빛깔이 인상적. 그러나 3악장에서는 숨을 멈추어주는 듯 순간순간 늦추어주는 호흡의 묘미가 아쉽다. 조금은 서두는 느낌이다.
알리시아 데 라로차는 모차르트의 협주곡 전집 새녹음(RCA)에 19, 27번을 추가했다. 예나 지금이나 따사롭고 매끈하게 풀어내는 라로차의 터치는 영롱한 모차르트에 제격. 27번 협주곡의 「라르게토」악장은 꿈결과도 같다. 아쉬움은 녹음쪽에서 나온다. 온기를 강조한 나머지 공간감이 부족하며 강약대비가 충분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콜린 데이비스 지휘,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 협연.
안드라스 시프는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지휘,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과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곡 전곡(텔덱)을 협연했다. 앞서의 두 음반과 달리 다소 튀는 주장으로 승부한 경우다. 시프가 들려주는 분절법은 매우 독특하다. 전통적인 베토벤 해석가들이 습관적으로 「이음표」로 해석하는 긴 멜로디도 그는 짧은 도막들의 이어짐으로 바꾸어놓는다. 베토벤의 마지막 악장들은 리드미컬한 피아노 주제와 공격적인 느낌의 반주부가 특징이지만 시프는 시종일관 냉정을 잃지 않는다.
『종결부 직전에 「터보」단추를 누르듯 마지막 힘을 짜넣는 느낌에서 베토벤의 매력을 느낀다』 그렇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이 음반에서 그 맛을 기대할 필요는 없다.
〈유윤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