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의 길]세계지배와 역사적 의미

  • 입력 1997년 10월 27일 06시 58분


몽골제국이 출현하기 전에도 유라시아의 초원을 무대로 등장했던 여러 유목국가들이 있었지만 중동이나 유럽을 직접 침략했던 예는 그리 흔치 않다. 과거 스키타이인들이 중동으로 들어가 아시리아제국을 무너뜨렸고, 아틸라의 훈족이 센강을 건너 로마―고트 연합군을 대파하고 이탈리아로 들어가 로마를 포위한 일이 있었지만 그들이 그곳에 국가를 건설하지는 않았었다. 몽골인들의 정복과정을 가만히 살펴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제국의 건설자인 칭기즈칸이 북중국과 중앙아시아의 국가들을 무너뜨리고 이 지역들을 자기 제국의 일부로 삼아 직접 지배할 생각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는 유목민의 아들이었고 그의 세계는 어디까지나 초원에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그의 원정은 「정복」이 아니라 「응징」을 위해서 실행된 것이었다. 중동과 러시아에 대한 몽골의 지배는 칭기즈칸 사후에 실현되었다. 그 배경에는 이 두 지역에서 전개된 상황과 몽골 내부의 사정이 있었다. 중동에서는 험준한 요새를 근거지로 삼는 소위 「암살자단」이 골칫거리로 등장했고, 러시아에서는 킵착, 불가르와 같은 유목민들의 활동이 몽골제국의 외곽을 불안하게 했기 때문에 이러한 반몽골세력을 분쇄할 필요가 생겼던 것이다. 한편 몽골의 군사귀족들도 가축만 풍성한 초원이나 칸의 직할지인 북중국과 중앙아시아가 아닌 새로운 영역을 정복하고 그 과실을 향유하기를 원했다. 결국 이러한 사정들이 어우러져 새로운 정복이 추진되었고, 그것은 칭기즈칸의 경우와는 달리 「정복」과 「지배」로 이어졌던 것이다. 몽골군의 러시아 원정은 1235년에 단행되었다. 원정군은 모두 12만명에 이르렀다. 칭기즈칸의 장손 바투가 총사령관이자 우익군을 맡고 오고데이칸의 장자 구육이 좌익군을 담당하여 1236년부터 볼가강을 건너 작전이 시작되었다. 1237년 킵착과 불가르를 경략하고, 그 다음 해에는 모스크바를 비롯한 도시들이 차례로 함락되었다. 1240년 수도 키예프를 잿더미로 만든 몽골연합군은 카르파티아산맥을 넘어 헝가리로 들어갔다. 1241년 4월9일 저 유명한 리그니츠의 전투가 벌어졌으나 몽골군에 맞섰던 2만명의 폴란드―게르만 연합군은 괴멸되고 말았다. 그해 겨울 몽골군은 얼어붙은 다뉴브강을 건너 크로아티아로 들어갔다. 헝가리 국왕은 이미 도망친 지 오래였고 이교도 몽골군에 대한 「십자군」의 소집을 외치는 교황 그레고리9세의 호소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야말로 유럽의 기독교세계는 몽골군의 말발굽을 저지할 아무런 힘도 없었다. 이때 몽골군은 갑자기 모든 작전을 중단하고 철수하기 시작했다. 저 멀리 몽골 초원에서 오고데이칸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몽골 장군들에게는 유럽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것보다 누가 다음 칸이 되느냐 하는 문제가 그들의 운명에 더 중요했기 때문에 한가롭게 기독교도들과 전투하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투는 몽골로 돌아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와 관계가 나쁜 구육이 칸에 즉위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남러시아 초원을 자신의 근거지로 삼았고 이것이 킵착한국이 되었다. 러시아인들은 이로부터 거의 3백년 동안 「타타르의 멍에」에 매여 살았고 그 상처는 지금도 러시아의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중동 정복은 이보다 약 10년 뒤에 시작되었다. 쿠빌라이칸이 즉위한 뒤 자기 동생 훌레구를 보내 「암살자단」과 바그다드의 칼리프를 없애도록 한 것이다. 이슬람과 기독교 지도자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암살자단도, 이미 실질적인 통치력을 상실한 칼리프의 바그다드도 몽골인들에게 그다지 힘든 상대가 아니었다. 훌레구의 군대는 1258년 1월29일 바그다드를 포위했고 2월10일 마지막 칼리프가 항복했다. 몽골인들은 칼리프를 교외의 벌판으로 끌고 가 카펫에 만 뒤 말발굽으로 짓밟아 죽였다. 칼리프는 아무리 유명무실했을지라도 기독교권의 교황과 같이 이슬람권의 단일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던 인물이었다. 따라서 칼리프의 죽음과 칼리프체제의 소멸은 모슬렘들에게 커다란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칼리프 대신 이교도 몽골인이 다스리는 일한국이 들어섰고 이로써 이슬람의 역사는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몽골인들은 태평양에서 지중해, 시베리아에서 인도양에 이르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였다. 몽골인들이 파괴만을 남긴 것은 아니었다. 더러 최초의 충격을 벗어나지 못한 도시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서서히 과거의 번영을 되찾기 시작했다. 특히 여러 지역과 문명이 하나의 정치체제 안에서 통합되면서 경제적 문화적 교류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동방에 대한 서구인들의 무지는 마르코 폴로의 글이 보여주듯이 보다 정확한 지식으로 대체되었고, 중앙아시아나 이탈리아 출신의 국제상인들은 초원과 사막과 바다를 누비면서 경제에 활력을 가져왔다. 이런 점에서 몽골제국이 인류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유라시아」라는 하나의 통합된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김호동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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