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의 길]공포의 「암살단」근거지 「알라무트」성채

  • 입력 1997년 10월 27일 06시 58분


칭기즈칸의 손자 훌레구는 1256년 본격적인 서방원정을 위해 이슬람세계의 수도 바그다드로 향하던 도중 오늘날의 이란 땅에서 「암살자단」의 강력한 저항에 부닥쳤다. 이슬람 시아파인 이스마일을 추종하던 암살자단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중동 제국의 요인을 암살하는 테러로 중동 전역을 근 2백년간 공포로 몰아넣던 집단. 1092년에는 셀주크조의 재상 니잠 알 물크가, 1191년에는 십자군이 예루살렘에 건설한 라틴왕국의 콘라드국왕이 암살되었다. 암살자단의 주 성채 「알라무트」는 엘부르즈산맥 깊숙한 곳에 있었다. 테헤란에서 서북쪽으로 약 1백40㎞ 떨어진 카즈빈시에서 다시 1백㎞ 가량 첩첩산중의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가니 거대한 바위산이 나타났다. 「독수리 요새」로 불렸던 이 성채는 앞은 경사가 60도 가량 되는 가파른 바위산인데다 뒷면은 깎아지른 절벽으로 정상에서는 사방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정상에는 성채를 쌓았던 벽돌 무더기들이 남아있고 바위틈에 대형 우물도 있어 오랫동안 포위되어도 견딜 수 있는 「천험의 요새」였음을 짐작케 했다. 1273년 페르시아지방을 지나간 마르코 폴로는 이곳에서 전해져 오던 암살자단과 그들의 우두머리였던 「산상(山上)의 노인」 하산 벤 사바에 관한 이야기를 동방견문록에 소개했다. 노인은 이 산 계곡에 포도주와 꿀과 우유가 흐르고 아리따운 여인들이 있는 궁전과 정원을 만들어놓고 젊은이들을 「하시시」라는 대마초를 먹여 이곳으로 데려왔다는 것. 이곳에서 즐겁게 지낸 청년들은 적국의 요인을 암살하고 돌아오면 다시 「천상의 낙원」으로 데려다 주겠다는 노인의 꾐에 빠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명령을 수행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훌레구는 암살자교단 내부의 갈등을 이용한 회유책으로 이 험한 성채도 함락, 철저히 파괴한다. 성채를 버리고 몽골군에 투항한 수령 루큰 웃딘은 몽골로 가던 길에 쿠빌라이칸의 지시에 의해 암살된다. 1979년 이슬람원리주의를 내건 호메이니의 혁명으로 시아파가 지배하는 이슬람공화국이 된 이란이 강경한 대외정책으로 중동에 긴장을 지속시키고 미국과 유럽 여러나라로부터 많은 테러의 배후로 지목받아온 것은 이러한 과거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전승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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