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34)

  • 입력 1997년 10월 24일 07시 49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2〉 여자는 다시 과일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거기서 그녀는 시리아산 사과, 오스만의 멜론, 오만의 복숭아, 나일에서 나는 오이, 이집트의 라임, 수단의 밀감과 시트론 따위를 샀다. 그리고 아레포의 재스민, 향기 높은 도금양의 열매, 다마스쿠스의 흰 수련 아네모네 제비꽃 석류꽃 에그란타인 수선화 등을 사서는 모두 짐꾼의 광주리에다 담았다. 꽃들을 광주리에 담고 있는 여자의 모습은 정말이지 꽃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자, 짊어지세요』 꽃과 과일을 광주리에 담고난 여자는 말했다. 짐꾼은 시키는대로 광주리를 짊어지고는 다시 여자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여자는 이제 푸줏간으로 가더니 양고기 열 근을 달라고 하며 돈을 치렀다. 푸줏간 주인은 더없이 질 좋은 양고기 열 근을 달아 바나나 잎사귀에 싸 주었다. 여자는 그것을 광주리에 담으며 말했다. 『자, 갑시다. 짐꾼 양반』 짐꾼은 다시 광주리를 짊어지고 여자의 뒤를 따라갔다. 여자는 곧 식료품 가게 안으로 들어갔으므로 짐꾼도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거기서 여자는 말린 과일과 피스타치오 열매, 티하마의 건포도와 껍질을 벗긴 편도를 비롯하여 식후에 먹는 갖가지 물건들을 사 광주리에 담았다. 『자, 따라오세요』 여자는 이렇게 말하고 사뿐사뿐 다시 걸음을 옮겨놓기 시작했고 짐꾼은 그러한 그녀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여자는 과자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그녀는 과일이 든 파이, 사향내 나는 튀김과자, 레몬을 넣은 빵, 설탕에 절인 멜론, 「비누 과자」 「자이나브의 빗」 「귀부인의 새끼손가락」 「법관의 한 입 과자」와 그밖에도 온갖 종류의 사탕을 샀다. 여자가 산 갖가지 종류의 과자들을 광주리에 담으며 짐꾼은 즐거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진작에 말씀하셨더라면 당나귀나 낙타를 끌고올 걸그랬습니다』 그러자 여자는 방긋 웃으며 손바닥으로 짐꾼의 목덜미를 가볍게 때리며 말했다. 『쓸데없는 수다를 떨 생각일랑 하지 마시고 따라오기나 하세요. 짐값은 충분히 드릴테니』 그 약간 장난스런 동작으로 자신의 목덜미를 때리는 여자의 모습이 짐꾼에게는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래서 그는 더없이 행복한 심정으로 광주리를 짊어졌다. 짐꾼의 광주리는 이미 가득 찼지만 짐꾼은 전혀 무거운 줄도 몰랐다. 그 아름다운 여자를 따라 가게들을 전전하며 갖가지 물건을 사는 오후 한나절이 그에게는 흡사 꿈길을 걷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여자는 또 향료상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그녀는 장미 오렌지꽃 수련 버들꽃 제비꽃 박하 유채꽃 유자꽃 재스민 라일락 이렇게 도합 열가지 향수를 샀다. 그밖에도 그녀는 두덩어리의 사탕, 향수병, 남자 냄새가 나는 향료 한 덩이, 침향, 용연향, 사향,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산 초까지 샀다. 그 많은 물건들을 모두 광주리에 담은 뒤 여자는 말했다. 『자, 이제 갑시다. 게으름을 피울 생각일랑 하지 마시고』 『게으름을 피우다니요? 저는 즐거울 뿐이랍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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