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결국 법정관리로 가는 기아

  • 입력 1997년 10월 22일 20시 36분


재계 서열 8위의 기아(起亞)그룹이 끝내 법정관리의 운명을 맞았다. 부도유예협약 대상으로 선정된 지 꼭 1백일만에 기아는 자력회생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계열사별로 법정관리 후 제삼자인수의 수순을 밟게 됐다. 강경식(姜慶植)경제부총리는 경제난을 수습하기 위해 기아의 법정관리가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아노조는 법정관리와 제삼자인수를 반대하며 총파업에 돌입, 새로운 위기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기아사태에서 비롯된 경제위기의 장기화를 막기 위해 정부가 전면에 나선 것은 옳지만 너무 늦었다. 신용평가기관이 자력회생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기아자동차의 화의(和議)신청을 묵살하고 법정관리를 선택한 것도 유감이다. 기아차의 경우 산업은행이 대출금을 출자로 전환해 공기업 형태로 운영하다가 경영권을 제삼자에 넘길 방침이다. 노사의 반발이 없더라도 제삼자인수 과정은 투명해야 할 것이다. 아시아자동차와 기아특수강 처리에도 해당지역 경제와 협력업체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기아 후유증을 빠른 시일내에 수습하는 일이 당면 과제다. 지금까지 기아는 해외사업은 물론 신차개발 수출 내수판매 등에서 경영마비 상태였다. 정부와 금융단은 그간 빚어온 기아측과의 반목을 씻고 긴밀히 협의해 경영을 정상화하기 바란다. 극심한 자금난과 조업단축으로 석달이 넘게 고통을 겪어온 협력회사들에 대한 지원도 하루가 급하다. 기아 및 협력업체노조의 파업은 부품공급 중단을 초래해 자동차산업 전체에 엄청난 타격을 주지 않을까 걱정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파업만은 자제해야 한다. 그간의 수습과정에서 기아 경영진과 노조는 정부와 정면대결, 해법을 찾는 데 어려움을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법정관리로 가닥이 잡힌 이상 기득권에 연연하기보다 회사를 살리는 데 주력해야 한다. 금융시장의 극심한 혼란과 연쇄부도 해외신용추락 등 경제난을 장기간 방치한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법정관리를 선택할 바에는 사태 초기에 결단을 내렸어야 했다. 기아 경영진과의 감정대립과 작동되지도 않는 시장경제원리 고집으로 세월을 허송해 국민경제가 치른 대가는 엄청나다. 수많은 기업의 도산과 해외차입금리 상승으로 부담을 가중시킨 책임은 강부총리에게 있다. 그는 사태수습 지연의 원인제공자이기도 하지만 경제정책의 최고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기아사태는 경영의 실패와 정책대응의 무원칙, 정부당국자의 아집(我執)이 국민경제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이 뼈아픈 교훈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도 문책은 필요하다. 정부와 금융단 기아측은 조속한 시일내에 기아를 정상화하고 금융혼란을 진정시키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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