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 앞으로 다가온 서기 2000년은 인류에게 새로운 1천년의 출발점이 되는 해다. 세계 주요 국가들은 2000년의 도래(到來)를 축하하는 이른바 밀레니엄 기념사업을 준비하느라 진작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21세기가 「문화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 아래 특히 문화분야의 역량을 강화하는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우리 정부도 어제 문화의 날을 맞아 이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구체적인 행사 내용을 담은 「문화비전 2000 보고서」를 발표했다.
사업내용은 2000년을 기념하는 문화예술축제 개최와 문화타임캡슐 제작, 판문점 문화특구 추진 등 모두 14가지로 요약된다. 전체적으로 참신한 아이디어가 별로 눈에 띄지 않고 선진국에 비해 시기적으로도 늦게 출발한 편이지만 정부가 뒤늦게나마 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미래에 대비하는 진취적 자세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선진 각국은 미래 문화예술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이 분야의 인재 양성을 위해 대학입시에 예술관련 과목을 필수과목에 포함하는 방안을 2000년 기념사업으로 추진할 정도다. 영국은 복권까지 발행해 가며 거액의 문화사업기금 조성에 나서고 있고 일본은 문화를 「국가의 존립기반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정의하고 문화기반 확대에 심혈을 쏟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체 국가예산 가운데 문화부문이 0.62%에 불과하다. 그나마 예술분야 예산은 그중 10분의 1도 되지 않는 사실이 문화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서울에서 막을 내린 세계연극제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작품이 관객들에게 외면당한 것은 우리 문화의 국제적 위치를 말해준다.
코앞의 문제에 매달려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 꼭 문화뿐만은 아니다. 2000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사회 각 분야에서 새로운 세기, 새로운 1천년의 준비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만큼 당면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탓이기도 하겠지만 그럴수록 미래를 준비하는 작업에 범국가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정부의 2000년 기념사업이 그러한 준비에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알차게 추진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