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총리는 어디 있었나.
쌍방울이 화의를 신청하고 태일정밀이 부도유예협약에 들어가면서 경제 위기감이 고조된 15일. 강경식(姜慶植)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은 홍콩에서 열린 동아시아 경제정상회의에서 「10년 뒤의 아시아경제」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었다.
그는 『시장 메커니즘을 과도하게 규제하는 모든 요소를 철폐하고 국내 제도와 정책을 국제적 기준에 맞추는 데 최대의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시장경제론을 거듭 강조했다. 기업가들이 『제발 경제 좀 살게 정부규제를 줄여달라』고 정부에 거듭 건의해온 것과 비슷한 주장이다.
그는 이어 『한국에서도 그렇듯 구조조정이란 강력한 반발과 갈등에 직면하게 마련』이라고도 말했다. 그 험난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시의적절한 제도를 공정하게 운용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말인 듯하다.
홍콩에서 그가 「최우선과제는 경제시스템을 열린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것」이라며 동아시아 경제를 걱정하는 순간 우리 주가는 썰물처럼 빠지고 있었다. 전문가들조차 주가폭락에 놀라 『이쯤되면 정부가 어찌하고 싶어도 안되는거 아니냐』면서 깊은 우려를 감추지 못하던 16일 오후 그는 서울로 돌아와서 재경원 간부들에게 대책마련을 지시했다.
강부총리는 이달에는 국내에서도 지방나들이를 많이 했다. 21세기 우리 경제의 과제를 설파하는 경제비전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던 것. 기아그룹 문제는 물론이고 쌍방울 해태 등의 위기가 속속 전해지던 시각, 그의 화두는 계속 「21세기」였다.
21세기는 우리에게 무척 중요하다. 그러나 「번데기가 나비로 바뀌는」 고통을 감내하자고 일관되게 강조하는 강부총리는 적어도 고통의 현장에서 현안에 애정을 갖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말 한마디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부총리이기 때문이다.
백우진<경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