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이명건/『「오빠」한텐 알리지 마세요』

  • 입력 1997년 10월 6일 20시 24분


『잘못인 줄은 알았지만 오빠 얼굴을 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어요』 6일 서울 송파경찰서 소년계에 절도혐의로 붙잡혀온 이모양(13)과 최모양(13). 인기그룹 H.O.T의 팬클럽 회원인 이들이 다니던 중학교를 자퇴하고 가출한 것은 지난 7월. 두 소녀는 그룹의 멤버인 K씨를 만나기 위해 그의 집(송파구 오금동) 앞에서 매일 밤을 지샜다. 바쁜 일정에 쫓겨 새벽에야 집에 오는 K씨의 얼굴을 잠깐이라도 보는 것이 이들의 즐거움이었고 그가 말을 한번 걸어주기라도 하면 기쁜 마음에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았다. 『집에 있으면 부모님 때문에 새벽에 나올 수가 없잖아요. 오빠를 하루라도 못보면 잠도 오지 않고 밥도 먹을 수 없었어요』 집을 나온 지 두달째. 그동안 친구집과 교회를 찾아 다니며 숙식을 해결했지만 더 이상 신세를 질 수 없다는 생각에 절도를 모의했다. 지난달 22일 K씨의 집 앞에서 다른 팬클럽 회원의 가방을 뒤져 옷가지와 삐삐 등을 훔쳤다. 다음날 다시 K씨의 집을 찾은 이들은 경찰에 붙잡혀 집에 보내졌지만 「오빠」의 얼굴이 떠올라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다시 가출한 이들은 지난달 30일 K씨의 집 근처 놀이터에서 만난 L양(8)을 꾀어 그의 집에서 금반지와 현금 10만원 등을 훔쳤다. 죄책감보다는 「오빠」를 매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수단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경찰에 붙잡힌 다음에도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어 보이던 두 소녀는 『오빠가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는 물음에 비로소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경찰관에게 자신들의 범죄 사실을 K씨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다시피 했다. 『우리 때문에 오빠가 무슨 피해를 보는 게 아닌가요. 수고하시는 오빠에게 폐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명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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