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쓰는 선비론/이황]끝없는 벼슬사양…「무단이탈」까지

입력 1997-10-02 07:28수정 2009-09-2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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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不惑)의 고개를 넘어서며 「물러나 살겠다」고 마음먹었던 이황. 이를 위해 그는 호마저 퇴계로 짓고 죽는 순간까지 끝없이 벼슬을 뿌리쳤다. 무려 20차례가 넘을 정도.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의 학덕이 초야에 묻히는 것을 세상이 안타까워했음인가. 34세때 승문원권지부정사를 시작으로 대망의 벼슬길에 올라 10년 뒤 성균관사성에 이르자 그는 귀향을 꿈꾸기 시작했다. 이후 사직서를 내고 퇴귀(退歸)를 거듭하지만 그때마다 조정의 소환이 뒤따랐다. 두번째 퇴직후 다시 관직에 불려나간 그는 한양을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단양 풍기군수를 자청, 지방으로 내려갔고 이것마저 번잡했던지 세차례의 사직원 제출 끝에 회답도 기다리지 않고 짐을 꾸렸다. 「무단이탈」이었다. 조정은 그를 벌하여 직첩(職牒·임명장)을 박탈해버렸다. 이때가 50세. 그러나 조정은 다시 그가 필요했던지 홍문관교리를 주어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억지로 입정(入廷)한 퇴계는 한해를 채 넘기기도 전에 성균관대사성을 버리고 다시 초야로 돌아선다. 52세. 이후 세상을 뜰 때까지 20여년은 벼슬임명 사퇴 임명 해직청원 임명 취임거부 등의 연속이었다. 상호군 형조참의 병조참의 첨지중추부사 홍문관부제학지제교 춘추관 수찬관 공조참판 동지중추부사 공조판서 홍문관 대제학지성균관사 동지경연춘추관사 예조판서 의정부우찬성 판중추부사 이조판서 등. 그러나 이같은 임명과 사퇴의 끝없는 반복도 실은 하나의 형식이었다. 퇴계가 의지를 굽히지 않을 것이 뻔한 마당에 임금으로선 상징적인 임명을 통해 예우를 갖추고 사림의 지지를 얻으려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상호군이나 중추부사가 명예직이라는 점이 그러하다. 결국 문서상의 임명과 사퇴의 연속이었던 것이다.퇴계가 공식적인 귀향 허가를 받은 것은 세상을 뜨기 2년전 68세가 되어서였다. 〈이광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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