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충식/문화산업 역전의 날은…

  • 입력 1997년 9월 29일 20시 43분


만화속의 장면만큼이나 박진감있는 경기였다. 휴일 낮 축구 한일전의 그 통쾌한 역전 드라마를 지켜보면서 무슨 만화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숱한 만화가 팔리고 축구를 소재로 한 만화도 수없이 많은 일본을 떠올렸다. 열도 안에서만 보는 게 아니고 세계에 내다 파는 만화왕국 일본을. 로마에 가는 여행자라면 현지 TV의 어린이 프로를 눈여겨 보라. 반드시 축구나 야구를 주제로 한 만화영화가 있고 마지막 부분 자막에는 일본 사람들의 이름이 뜰 것이다. 파리를 여행해도, 심지어 미국의 중소도시를 여행하며 케이블TV 채널을 돌리다가도 일본 만화를 마주하기는 어렵지 않다. ▼ 꼬마들 사로잡는 日만화 국내 공중파TV에 나오는 만화영화도 대부분 일본제다. 정부 통계에도 어린이를 사로잡는 TV만화 프로 중 국산 작품은 겨우 6.4%일 뿐 거의 일본서 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어린이들의 이목을 모으고 있는 서울대공원의 동아·LG국제만화페스티벌 전시회는 우리 만화산업을 자극하고 세계화로 이끌며 어린이들에게 세계만화를 보여주는 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TV애니메이션은 일본 만화가 휩쓸고 있다. 만화영화 사업의 또다른 한 축인 극장용 만화는 미국이 「라이온 킹」이나 「미녀와 야수」같은 대 히트작으로 석권하고 있다. 그리고우리는축구의 한일전과는 전혀 딴판으로 어깨를나란히 하는 모습이 아니라그 고부가가치 황금알을 낳는 히트작들의 밑그림이나그려 팔고 있다. 한국의 만화영화 실력자체는 뒤지는 것만도 아니다. 지난해 수출액도 9천2백5만7천달러로 잡혀 있을 만큼 짭짤한 편이다. 제작업체도 1백개를 훨씬 넘고 종사자도 1만여명을 헤아리고 있다. 작화는 수준급이지만 문제는 스토리와 기획능력에서 미국과 일본에 뒤지기 때문에 하청공장노릇이나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디즈니사가 「라이온 킹」을 만들면서 94년에 들인 제작비는 약4천만달러였다고 한다. 그러나 여러나라의 극장에 내다 판 극장수입만 7억달러가 넘었다. 게다가 컴퓨터게임이나 캐릭터 장사에 이르는 다양한 벌이로 남긴 돈은 무려 10수억달러라는 얘기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디어와 제작기획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신발왕국 코리아가 그랬듯이 죄다 주문자상표부착 방식으로 값싼 밑그림이나 그려주는 품팔이 처지인 것이다. 영화산업 자체의 역조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영화분야 수출입액에 관한 영화진흥공사의 통계를 찾아보면 작년 한해 동안 외화수입은 미국 홍콩 등지에서 4백83편 8천8백66만달러 어치에 달했다. 그러나 수출은 고작 19편 12만1천2백달러어치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런 추세가 작년만의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당분간 바뀌지 않으리라는 데 더 문제가 있다. ▼ 휴일 달군 그 투혼으로 이러한 만화나 영화산업의 열세는 종사자들의 불평처럼 정책부재에서 비롯되는 것만도 아니다. 요즘 문제가 되는 외설이냐 예술이냐하는 이른바 「표현의 자유」논란과도 별반 관계가 없는 것 같다. 낱낱의 작품들이 바깥에서도 눈길을 모으고 인기를 끄는 이른바 보편성과 세계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데 보다 근원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정부 정책을 두둔하는 게 결코 아니라 이런 창조적인 산업은 결국 종사자들의 능력과 노력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문화의 세기가 다가오고 있다고들 말한다. 문화산업이야말로 고부가가치의 상징이며 21세기 지력(知力)사회의 경쟁력 그 자체다. 축구에서처럼 만화영화같은 산업에서도 질 수 없다. 휴일을 달구었던 그런 투혼으로 21세기 문화산업의 대역전을 이룰 수 없겠는가. 김충식(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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