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공종식/「입찰담합 수사」 이상해진 검찰

  • 입력 1997년 9월 25일 19시 57분


설계 및 감리업체의 고질적인 입찰담합비리를 수사중인 서울지검에는 요즘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연이어 발생해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23일 오전 수사결과를 발표하던 검찰은 전례없는 「겸손함」을 과시했다. 서울지검 특수1부 수사진이 모두 동원돼 2개월만에 밝혀낸 입찰비리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검찰은 간단한 10쪽짜리 보도자료를 내놓으며 『별로 대단한 수사가 아니다』라고 연막을 쳤다. 이번 수사는 국내 설계 감리회사중 업계 순위 1∼24위가 모두 포함됐고 성과도 적지않았던 만큼 검찰의 태도는 기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검찰이 대형 비리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한 뒤 언론에 되도록 크게 보도되도록 요청하던 「통상관례」와도 사뭇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검찰 간부들은 이날 밤 늦도록 「축소 보도」를 위해 애를 썼다. 특히 다음날 소환될 예정이던 민선시장 등 지방자치단체 고위간부들은 수뢰액수가 1천만∼2천만원에 불과하다며 피의자들을 감싸는 듯한 태도까지 보였다. 이어 검찰은 25일 업체에서 각각 2천만원과 1천6백만원의 돈을 받은 순천시장과 충북 행정부지사를 「이례적으로」 모두 불구속입건하기로 했다. 검찰관계자는 『이들을 구속할 경우 행정공백이 우려되기 때문에 불구속했다. 불구속도 구속과 마찬가지로 처벌이 아니냐』고 해명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에 앞서 8백만∼1천만원을 수뢰한 4, 5급 공무원들은 모두 구속했다. 검찰주변에는 수사에 대한 업계의 불만이 정치권과 검찰수뇌부에 전달됐기 때문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검찰수뇌부는 『수사가 장기화할 경우 업계에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검찰이 이쪽저쪽 눈치를 봐야 한다면 앞으로 선거를 앞두고는 구조적인 비리에 대해 수사가 불가능해지지 않겠느냐』는 일선검사들의 우려를 새겨들어야 할 것 같다. 공종식 (사회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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